나의 이야기

4박5일 그 여정의 셋재날

클레오파트라2 2010. 3. 27. 23:16

범어 네거리에 있는 그랜드호텔서 1박을 했다.깜깜한 밤에 도착한지라 첫 발을 내딛는 도시가 생경하기만 하다.

아니 한5년쯤 발을 딛었던 기억이 아득하다.그때도 아주 잠깐 대구방송국 퀴즈프로 참여차 갔던 기억이 났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구경하기만 내일 일정이 빠듯했던지라 부지런한 아침을 기약했다.

좀 빨리 일어나면 대구의 아침을 구경하리라 맘 먹었다.

빠듯한 일정에 피곤했던지 뒤척거림 없이 밤새 잘 잤다.

남들은 잠자리만 바뀌어도 못 잔다는데 난 잠자리 바뀜을 탓하지 않는다.

천성이다.역마살이 낀자 밥 투정도 반찬 투정도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여행 중에는 그저 탈 없이 잘 먹고 잘 쉬고 즐기면 그만 아닌가!

여행객의 기본 자질은 타고 난 듯 싶다.

대구의 아침은 오리무중이다.낯선 방문객에게 쉽게 얼굴을 내밀 기세가 아니다.

안개도시 대구라는 이름표를 내걸었다.끝내는 안개속에 갇힌 모습이다.

안개일색에 이방인 대략난감 할 밖에.

도시 구경도 물 건너 갔다.8시30분 대구 출발

30여분 시내를 달려 북대구 톨게이트까지 갔건만 무에 그리 부끄러워 안개는 동행을 했다.

10시40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11월 늦가을에 솟는 해에게 안개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하회마을이 한 눈에 다 들어 온다.시야가 트여서 좋았다.

안개비 조금 내려도 하회마을 구경하는데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양반가의 주택을 구경하기에는 정말 손색이 없는 곳인데

서애 유성룡의 양진당은 공사중이어서 그 멋스런 자태를 볼 수 없었다.

입구에 설치된 공사 안내판이 먼저 반겼던 곳이다.

미장이 000

와공 000

드잡이 000

드잡이는 뭐지?

어렵다.나중에 여행 다녀와서 찾아봤더니

드잡이공-전통문화재릐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란다.

담이 높아 좀체 안채가 보이지 않은 고샅을 돌아 도착한 삼신당은 비 온 뒤 끝인지 더 성스럽다.

숱한 세월 마을의 안녕을 빌었을 곳

이 곳의 기도가 영험한 때문일까?

반대로 꼰 새끼줄에 수많은 여행길들의 소원들이 걸려있다.

거기까지 발길 닿았는데 나라고 쓰지 않을수 없었다.

한귀퉁이 잠시 차지하고 제법 진지하게 소원을 적어본다.

혹여 누군가 보면 천기누설 돼서 그 기도발이 떨어질까봐 몸을 똬리를 틀면서 말이다.

임진왜란을 예견한 국보 징비록의 저자 서애 유성룡을 다시 만나는 시간은 제대로 된 역사공부 시간이었다.

이제껏 의무감 때문에 배웠던 역사와는 사뭇 다른 역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유물관 영모관 앞에 반송 만지송도 운치있다.

만가지 가지 뻗듯 후손들이 번창하라는 염원을 담았다니 조상들의 후손 사랑은 극에 달하고도 남음이 있다.

"임금께 한 발자국이라도 조선땅을 떠나신다면 조선은 곧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해오는 듯 되살아났다.

낙동강 물줄기가 돈다는 하회마을을 한바퀴 휘 도는 여유로움도 가졌던 곳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벌써 다섯번 걸음이지만 올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똑 같을 수 없겠지.

함께 하는 사람 날씨 그날의 컨디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니 매 다를밖에.

첫사랑 첫키스 첫 직장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단어가 설레게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첫안동행도 무지 설레고 행복했으니까.

몇년전 겨울에 가족여행을 왔다가 하회마을서 1박을 했었다.장작불 지핀 온돌방에서 지글지글 몸을 지졌던 기억,

새볔에 화장실 나왔다가 너무도 총총한 별에 마음을 빼았겼던 곳이었다.

모래판에서 아이들과 씨름했던 그 자리까지도 생생하다.어제인양

점심은 안동간고등어 정식이다.

워낙 맛나게 먹어봤던 점심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실망도 없던 점심이었다.

병산서원에 들러 낙동강 물줄기 굽어보는 것도 괜찮았다.

찬바람 부는 루에 앉아 듣는 20여분의 강의도 뼈속까지 들어오는 찬바람 만큼이나 머릿속에 들어온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설명하는 안내자에 그도 심취했지만 우리도 심취했다.

추어서 열정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만대루,늦도록 대할만하다.는 뜻을 가졌단다.

해가 떠서 병풍산을 늦게까지 대할만 하고 뜨는 달을 늦게 맞으니 또 대할만한 곳

이 세상에 지어진 이름은 어느것 하나 허투루 그냥 지어진게 없음에 또 한번 감탄했던 곳이다.

병산서원 입교당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넘 멋져서 늦가을만 아니라면 과객의 발길을 붙잡기에는 충분했다.

1시40분 병산서원을 뒤로 하고 영주부석사로 달렸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너무 두꺼워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책으로 간주하고 책꽂이에 꽂아둔지 오래

떠나면서는 미리 읽어보리라 생각했는데 다짐으로만 그쳤던 그 곳으로 가는 것이다.

너무도 유명해서 간절히 가 보고픈 절집중에 절집이었다.

기대를 잔뜩해도 좋았던 절

그래서 실망하지 않아도 됐던 절

기대보다도 더 좋았던 절집이라면 과대평가일까?

오른길에 노점상 할머니가 건넨 영주 꿀사과가 일품이었다.한 조각이어서 맛난 사과는 결코 아니었다.

사각사각 입에 베어 문 순간 와! 소리가 절로 났던 최근에 만나기 어려운 사과였다.

사과맛에 솔직히 사과가 욕심이 났지만 멀기까지 끌고 다닐 엄두를 못내서 사는것은 포기를 했다.

부석사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가파라서 이쁜 절집이다.

서서히 걸으면서 태백산 부석사라는 일주문을 지났다.

오르는 길이 참 예뻤다.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절집 부석사

처음 만난 부석사 풍경에 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꿈에도 그리던 부석사를 만났으니 그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오르는 계단속에 갖은 번뇌랑 벗어 던지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석축이 아름다웁고 대웅전 들어서는 안양루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찍고 또 찍고 보고 또 보고다.

어찌 이리 아름다운 절간이 있을까?

요리조리 보아도 너무도 아름다운 절 집이었다.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그 절집에 선묘낭자도 함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애써 찾으려하지 않아도 절로 보이는 곳에 선묘낭자는 함께했다.

이중환의 택리지 83쪽을 보면 명주실로 쓰면 다 뜨더라는 그 바위가 무량수전 바로 오른편에 있다.

뜬 돌 부석사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무량수전 그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발 아래 풍경을 굽어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비추는 해넘이까지도 환상으로 다가옴은 아마도 그곳이 부석사였기 때문이리라.

내친 걸음에 어디든 못 가랴

한참을 낙엽을 밟아 조사당까지 찾았다.

오랜세월 그 절과 함께 했다는 선비화,골담초가 객을 슬프게 했던 곳이다.

조사당 한켠에 철창에 갇힌 골담초,끝내는 못 볼 것을 본듯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자연은 역시나 자연스럽게 자라야할것을 인간은 보호라는 이름하에 철망을 씌었다.

그도 아주 단단히.......



오래 기억하려는 양으로 여러번 뒤돌아 보고 또 돌아봤던 부석사다.

사실은 언제 또 발길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것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남느라 일행과 꽤 떨어졌다.

고즈넉한 산사의 어둠을 송두리째 안고 싶은 욕심을 부렸던 곳

숱한 절집에 발길을 두었건만 쉬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했던 곳

부석사와의 첫 키스는 연인과는 첫키스처럼 달콤하여라.

부석사가 내 맘을 사로잡았다.

5시20분 산사의 어둠은 빠르게 내려앉았다.

40여분 달려 풍기서 저녁식사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드는 집 약선당에 약선 정식은 또 색다른 맛이었다.

햇살에 익히고 산바람에 식혀 빨갛게 영근 소백산 한 조각 떼어 올렸다는 밥상이니

어찌 감개무량 행복하지 않을손가?

음식 하나 하나가 약이 될 수 밖에 없는 정말 훌륭한 저녘이었다.

남도음식과 걸맞다면 괜찮은 평은 될듯.......

3박은 단양의 대명리조트다.

와 오늘 얼마나 많이 달려온거야?

버스라서 그만큼 달렸겠지.

날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객은 즐겁다.

피곤?

노 노

여행 덕분에 행복한 날의 연속선상에 서 있다.



2008.11.26

여행 셋째날을 마무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