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통영 그곳에 가다2008.10.29

클레오파트라2 2010. 3. 27. 23:13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미당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그렇게 적고 있다.

통영을 만나기 위해 나는 그렇게 즐기던 잠을 설쳤다.

눈 떠보니 4시30분

빨라도 너무 빠른 시간이다.

하지만 다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이미 깬 잠은 다시 올리가 만무하다.

이왕지사 깬 잠 밥 시간까지는 나만의 호젓한 시간이렸다.

통영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니 통영에 적을 둔 이들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듯 싶었다.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펼쳤다.

참으로 오랫만에 쥐어 본 시집이다.

비우고 또 비우고 가다듬고 또 가다듬은 시어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시에 취하니 새볔 어스름은 순식간에 걷히고 말았다.

늘 그렇듯 평상시와 같은 분주한 일상이 있는 아침이었다.

아니,집을 나서면서는 일상이 아닌 일탈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도심을 탈출하듯 빠져나간 버스는 깊어가는 가을을 앞서듯 뒷서듯 안겨주었다.

사는 것에 너무도 급급해서인지 정작 가을임에도 가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즈음에

만난 들녘은 가을 걷이가 다 끝난 뒤라서 허허로웠다.

비가 오지 않은 탓인지 지금쯤 어디서든 만날수 있으련만 곱게 물든 단풍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떠나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한 문학기행이다.

이동 중에 박경리의 소설 통영을 무대로 펼쳐진 '김약국의 딸들' 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도 푸니 2시30분 남짓한 시간은 훌쩍 가버리고 만다.

맨 먼저 통영서 우릴 반기는 것은 바로 바다다.

갈매기 날으고 바다 위에는 한가로이 배들이 표류하고 있다.

콧끝으로는 벌써 갯내음이 진하게 묻어온다.

통영의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그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다였다고

통영이 낳은 유명인들이 많다.

시인 김춘수 청마 유치환 극작가 유치진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문학을 하고 미술을 하고 음악을 하는 그들에게 통영의 바다는 오롯이 창작의 밭이 되었을 것이다.

무수히 걷어 올려도 또 건질 것이 있는

마르지 않은 샘과 같은 풍요의 바다!

그들에게 바다는 일용할 양식이기도 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청마 문학관은 운치가 있었다.

청마의 삶과 문학을 한눈에 보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이룰 수 없는 비운의 사랑이 그에게 많은 불면의 밤을 주었고 그 불면의 밤은

주옥같은 시들을 그에게 안겨주었을것이다.

초가의 아담한 생가도 눈에 들온다.정갈한 장독대 한켠에서 그 옛날 아낙이 돼보려 사진 한컷

점심은 통영의 내 놓라하는 맛난 음식이다.

통영굴밥

통영 앞바다에게 갓 따온 굴이기를 바라면서 먹는 굴밥은 정말 별미다.

점심 후 전혁림 미술관에 들렀다.통영이 자랑하는 추상화가 노익장을 자랑하면서 작업활동을 왕성히 한다는 한 예술가의 혼을

만날 수 있으려니 잔뜩 기대했는데

이런 쯧쯧!!!

가는 날이 휴관일이다.

속 내용은 상상만 하고 미술관 겉 모습만 열심히 들여다 보고 왔다.

건물 전체를 타일로 했고 그 타일엔 그의 작품들이 나오니 어쩌면 속을 볼 수 없었어도

다 본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인없는 미술관에 가을햇살은 또 왜 그다지도 곱던지!

다음은 충렬사다.

이순신장군을 모신 사우다.전국의 이순신 사우는 26개정도라니 그 유명세를 또 한번 실감한 곳일수밖에

충렬사 건너편에 있는 명정골 우물이 발길을 붙잡는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명정골인지라 그 앞에 놓은 육필원고도 놓칠 수 없다.

저만치 박경리의 생가가 보이지만 갈수가 없다.단체여행의 한계인 것이다.

충렬사에서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충렬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

흔치 않는 건물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 깔린 오석,용마루에 있는 구멍 그리고 8괘 내삼문 위에 있는 구멍.망해 모두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명정골

해와 달을 상징하는 것들이 그 건물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해설사의 멋진 해설이 없었더라면 보고도 볼 수없었을것을 보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했던가?

해설사 덕분에 많은 것을 또 알게 된 곳이었다.

다음은 낙망산 공원

가파른 고개를 넘어서 만난 낙망산 조각 공원은 드 넓은 바다를 선물했다.

때마침 물살을 가르고 지나는 거대한 배도 한자락 풍경이 된다.

그저 보고만 있어서 좋은 바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품으니 솔향이 묻어나는 바람도, 가을햇살도 시가 될듯 싶은데.....

시는 아무나 쓰는게 분명 아니다.

시상이 맴돌긴 하는데 맴돌다 자리를 못 잡고 그냥 떠난다.

천상 나는 시인일 수가 없었다.

가을의 여유로움을 한껏 느꼈던 낙망산 산책은 바다도 좋았고 바람도 좋았음에 말해 무엇하랴!

오후 4시

버스는 통영을 벗어나 귀향을 서둘렀다.

못내 아쉬워 보이지 않을때까지 쳐다본 통영의 바다는 추억이고 그리움이었다.

10월 끝자락에 나선 통영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의 아름다운 동행 그 동행이었다.

10월 28일 통영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