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박5일의 여정-그 첫째날2008.11.24

클레오파트라2 2010. 3. 27. 23:14

가을 가뭄에 단비가 내렸다.
밤새 내린 단비 덕분에 목말라 하던 대지는 조금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으리라.
4박5일 결코 짧지 않은 여행에 내리는 비라서 그리 반갑지도 않을 수 있으련만
길 떠나는 데 내리는 모처럼의 단비라고 맘을 먹으니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긴 여행길에 가장 먼저 동행한 것은 어쩌면 가을비였다.
저만치 앞서간 가을비는 경주 까지 달려오는 4시간 내내 동행해주었다.
어찌 길 떠나는 자의 외로운 여행길을 알기나 한 것처럼.......
한때 고운 색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눈길을 붙잡았던 불타던 나무들도 가을비 속에 촉촉히 젖어 들었다.
잎마저 홀가분하게 떨궈버린 나목들의 향연
깊을대로 깊어가는 만추의 정취를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계절마다 운치있는 차창 밖 풍경들이다.
담양 순창 남원 거창
빗길에 버스는 손살같이 88고속도로를 달렸다.
거창은 안전히 운무의 늪에 갇히고 말았다.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오리무중
운무가 질펀하게 깔린 산야는 옛 그림에서 만난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냈다.
4시간 달려온 버스는 경주에서 우릴 토해냈다.
천년고도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터미널,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대도시의 터미널과는 사뭇 달랐지만 촌스러움 속에 정겨움이 묻어났다.
택시를 타고 대릉원 근처 식당으로 갔다.
비 내리는 경주와 어울리는 꽤 운치 있는 식당이 나그네 맘을 사로 잡았다.
잔치집 마냥 맛갈스럽게 준비된 음식도 나그네의 식욕을 돋우었으메 말해 무엇하랴?
가을비 마당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경주에서 첫 식사는 비 덕분에 더욱 운치가 있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대릉원으로 향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누려보는 빗속의 호사다.
산성비 운운하며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려고 몸부리치던 지난날과는 달리 비 맞아도 좋을만큼 비는 대릉원에 내려주었다.
첫날의 답사는 이렇듯 가을비 속에 시작되었다.
촉촉히 비에 젖은 대릉원에 서니 맘까지도 차분해지는 답사객이 되었다.
연못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도
마지막 잎 떨구는 단풍나무의 몸짓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까지도 느껴짐은 그 속에 동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만추의 대릉원 경치가 정말 운치있다.
빗소리가 모든 걸 보듬었기 때문일까?
해설사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도 잡음없이 귀에 속속 잘 들어온다.
비 오는 날의 답사가 가져다주는 또 다른 묘미다.
천마총까지 둘러 보고 남산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보이는 여러 유적들이 경주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케한다.
남산탑곡마애조상군
이름부터 거창하다.쉽게 풀이하면 좋으련만.
덧붙이자면 남산의 탑골에 있는 바위에 새긴 여러 조각상들의 집합체인것이다.
무슨 연유인지 대여섯번의 경주 나들이에서도 늘 빠졌던 남산이었는데
드디어 비 내리는 날 가게 되니 감회가 새로울 밖에.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오솔길을 가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비에 흠뻑 젖은 소리나지 않는 낙엽을 밟은지 되돌아보건데 까마득하다.
계곡물 흐르고 그 계곡도 낙엽으로 가득하다.
낙엽과 산사 그리고 계곡 비까지 한박자가 되어 운치를 더했던 탑곡길이었다.
4면에 새긴 부처 비천상 스님 탑 등 모든게 신비롭게 다가선 조각상들이었다.
탑 가까이 가니 선명하게 새긴 감실의 세 부처상이 오래도록 눈길을 사로잡는다.입술 몸 옷자락까지 채색된 것도 그렇지만 조금 빗겨 선 모습까지도 다른 어디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이었다.
손 하나를 배에 얹어 둔 안산불은 아들 못 낳은 자들의 수많은 손을 탔던지 코는 이미 닳을대로 닳았다.
영험하다는 안산불의 코를 만지고 돌아간 많은 이들은 아들을 낳았을까?
비 때문인지 산사는 그새 어스름이 기어들었다.더 늦은 시간에 도착한 감은사지보다도 더 빠르게.
경주 남산을 가지 않고 경주를 왔다갔다고 말하지 말라던 해설사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5시10분 감은사지에 도착했다.
감포 바다 앞임을 실감케라도 하듯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칼바람이었다.
그 허허 벌판 앞에 서면 누구라도 움츠려 들 수 밖에 없을 공간이었다.
한때는 화려했을 절,
그 절은 세월의 흔적을 두 개의 탑과 주춧돌로 대신하고 있었다.
근처 대숲에서 불어오는 댓잎 사각거리는 소리도 을씨년스러웠던 곳이다.
상륜부는 사라진지 오래 모진 세월의 해풍에도 끄덕없이 찰주만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682년 신문왕의 효가 아버지 문무왕의 충을 만나서 탄생된 절이라는 말이 결코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죽어서 까지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고 싶었던 문무왕이 드나들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금당 동쪽의 구멍, 장석의 태극무늬
아주 사소한 것들도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해설의 힘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핸드폰 불빛으로 그 태극 무늬를 찾아헤매는 열성을 발휘했던 감은사지다.
감은사지는 경주여행에서 오래 기억에 남았던 곳이다.
몇년 전이던가! 가족 여행을 겨울에 왔던 적이 있다.
입구에서 만난 동네 아주머니가 파는 곶감을 사먹은 적이 있다 . 어찌나 맛나게 먹었던지 두고 두고 이야기하는 감은사지 곶감이다.너무 늦은 시간탓일까?
동네 아낙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이번 감은사지에서는 바람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 절엔 바람만이 동해바다를 떠도는 문무왕의 넋처럼 바람만이 떠 돌았다.
저녁을 먹게 된 요석궁은 빼어난 풍광으로 나그네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곳이다.
요정을 연상케했다면 외람될 말이 될려나!
아무튼 오랜세월 풍상에 씻긴 소나무와 한옥집이 참 좋았던 공간이었다.
야간답사의 맛을 보여준 곳은 다름 아닌 안압지였다.
불빛에 그리고 물에 아른거리는 야경이 천년고도 신라의 화려한 밤을 이야기하는듯 싶었다.
술 석잔 한번에 마시기
팔뚝을 구부린 채 다 마시기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
안압지에서 발견 된 14면체 주령구의 벌칙들이 재미나다.
못의 물도 세번의 침전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였다는데 안압지를 조성하면서 들인 신라인의 공력과 지혜가 불 보듯 떠오른다.
달까지 떴더라면 더 좋았을 야간답사였다.
아니,휘엉청 달이 없어도 칠흑 속에 불빛소나타도 괜찮았던 답사였다.
반나절 애써 달려온 경주행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문명의 이기는 참 좋다.
하루 날이 저물기 전에 이렇듯 호텔에서 거침없이 답사기를 쓸 수 있으니 말이다.
2008.11.24
경주현대호텔 비지니스 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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