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박5일 그 여정의 네쨋날

클레오파트라2 2010. 3. 27. 23:17

8시 30분 대명리조트 출발이다.

단양도 첫 발을 딛었던 곳이고 보니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컴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리조트와 호텔의 차이를 바로 느꼈던 곳이다.

컴이 두대인데 한대는 고장 한대는 줄을 서서 어쩔수 없이 저녘 바깥 바람이라도 쐬야했다.

4박5일 내내 룸메이트 울산 선생님이 추워서 밖에 나가지 않겠다니 분위기 좋아하는 나만 나갈 밖에.

추운 날 청승처럼 보여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 바람만 쐬고 돌아왔다.

또 1박.

독특한 1박이다.

방과 거실이 있어서 그 넓은 공간을 하나씩 독차지하고 잤다.

무엇보다 방바닥이 뜨셔서 좋았던 곳이다.

숙면에 취하고 모닝콜에 깨었다.

6시30분

아직 밖은 어둑하다.

좀처럼 정성스레 하지 않는 화장을 정성스레 했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지!

사실은 늘 시간에 쫓겨 화장다운 화장을 못하는데 아침 홀로 맞는 시간이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8시30분 리조트를 떠났다.

언제올지 기약없는 rht이라 마천루처럼 높은 건물을 배경으로 한 컷 찍는 짬을 기어코 냈다.

참 잘한 일이다 싶지!

단양을 벗어남과 동시에 바로 꼬부랑 고갯길이다.

50여분 달려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영상으로 간간히 만났던 아름다운 청령포를 눈 앞에 바로 두는 것은 여행객을 흥분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삼면이 물로 둘러쳐진 청령포

12살 어린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쫓겨 유배를 온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역사이전에 청령포는 너무도 풍광이 빼어난 곳이었다.

나룻배로 건너는 시간이 딱 2분 넘 아쉽다.3면이 물이니 한바퀴 휘뚜루 돌아도 좋으련만 객 마음뿐이다.

어찌나 깨끗한지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뱃머리를 돌리기 전에 배 밑에 있던 까만 고기떼들이 화들짝 놀라 분주히 어디론가 흩어진다.

찬 물속에서 겨울을 나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것은 아닌지? 동행한 객으로서 미안한 맘까지 들었다.

청령포에서 제일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소나무 군락이다.

700여 그루의 소나무가 가히 장관이다.어린 단종에게 허리를 조아리는 신하처럼 단종이 머문곳으로 굽어들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긴 단종의 설움을 소나무들이 알고 있는양 말이다.

단종을 바로 옆으로 배알하는 신하의 모습과 어린 단종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잠시나마 서글픈 역사의 한 단면을 떠 올려야했던 곳이다.

건물을 돌아가노니 감히 입을 벌리고 다물게 못하는 소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수령600년을 자랑하는 관음송.

유수한 세월을 담은 관음송은 근육질의 잘 단련된 청년처럼 멋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린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삼았기에 단종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들은 소나무라서 관음송이라지.

하동의 송림과는 또 다른 맛이 나는 청령포 소나무 군락이었다.

낙엽진 솔잎 무성하게 떨어진 길을 걸으며 애써 올라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의 풍광은 또 얼마나 운치가 있던가?

시와 별 ,그리고 동강이 흐르는 영월은 하나 하나가 시선집중. 그 자체였다.

뱃길 다시 거슬러 올라와 돌아보는 청령포는 단종의 한 만큼이나 서럽게 보였다.

영상에서는 감히 느낄 수없는 답사의 감회라고 생각한다.

엎어지면 코닿을 곳 장릉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가깝다고 미리 말했으면 걸어서 와도 좋았을 거리를 무지하게 차로 움직였다.

12살에 유배를 와서 17살에 사약을 받았단다.유배된 자의 시신을 거두면 3족을 멸한다는 엄명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거둔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엄흥도다.장릉은 바로 단종의 능이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해서 한참을 가파른 길 걸어야 만날 수 있었다.

오른길에 만난 소나무도 인상적이었지만 금방 빗질을 했는지 깔끔한 그 길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보통의 왕릉들이 한양서 100리 안에 있는게 정상인데 정상을 벗어난 능이 그가 얼마나 섧게 살다간 주인공인지를 알게 한다.

한양서 500리 떨어진 곳이 영월이라니 감히 짐작하겠지.

단종 정자각서 4배하며 객으로서의 예의를 갖췄다.

11시40분 월정사로 이동했다.

이동 중 가을비 추적추적 내려 길 떠난 자의 마음을 심란케했는데

월정사 입구서 먹은 산채정식은 일순간 그 심사를 무너뜨렸다.

이세 보세 먹세해도 먹세가 최고라는 말 가벼이 들리지 않던 낮이었다.

전나무 숲이 아름다운 곳 하면 내소사라고 확신하는 터인데

그걸 깨트리는 곳이 바로 월정사 전나무 숲이라면 변덕이 너무 심하다고 객을 탓하려나?

비 내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이라서 더 운치 있었으메 분명하다.

우산을 받쳐들고 걷는 30여분의 산책길은 여행객이 누린 최대의 호사였다.

와! 넘 멋진 월정사 전나무 숲이다.

송두리째 하늘을 가려버린 월정사 전나무 한치의 바람에도 끄덕없어 보이건만

태풍앞에 맥없이 꺾이고 말았다.굴처럼 보인 곳 참으로 멋져서 우산은 멋으로 걸치고 비 다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마디로 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월정사 숲이다.

월정사 오르는 길에 만난 계곡은 살얼음이 졌다.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하는 계곡이다.

월정사의 독특한 탑 앞에 서노나니 비는 어느새 진눈깨비로 탈바꿈하여 내린다.

진눈깨비라지만 비보다도 눈이 더 어울리는 산사였다.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됐다는 천년고찰 월정사

성보박물관서 만난 귀한 유물들에 관한 해설도 돋보였던 곳이다.

월정사를 뒤로 하고 양양의 하조대로 가는길

만만치 않다.전형적인 강원도 길이다.

꼬불꼬불 곡예운전의 진수를 보여주는 길

넘어가는 길 900미터 지점서는 잠깐의 설경도 만났다.

이도 강원도의 힘이렸다.

전라도 땅에서 이미 본 첫 눈이련만 강원도 땅에서 만난 첫눈이라는 생각에 탄성을 질렀다.

눈이다!

눈!

4시40분 하조대 도착

바다가 보인다.바닷가에는 먹이를 찾아 낮게 내려앉은 갈매기로 가득찼다.

푸른바다보다는 하얀바다가 옳은 표현이 될듯 싶다.

티브틀면 애국가 나올때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하조대란다.바위속에 어찌 그리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았을꼬?

1300여년을 해풍에 견딘 소나무에게 박수를 보내도 좋을듯.......

하륜과 조준이라는 사람이 머물러서 하조대라고 했다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나중에 차분히 찾아봐야겠다.

바다풍광이 빼어나 자연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임에 분명하다.

비 내리고 해는 지고 어둠은 내리고 악조건이지만 시야 흐려도 그 나름의 멋이 있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무튼 숙소인 쏠비치로 향하는 동안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먹었던 회맛 또한 일품이었지.

영월에서 답사객을 위해 준비한 더덕주를 기분 좋다고 6잔을 마셨더니 객이 좀 취했다.

비에 취하고 바다에 취하고 여행에 취하고

또 하루의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