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린 때문에 도심은 한결 깨끗하게 다가온다.
겨울의 끝자락에 떠나는 남도 답사는 벌써 공기부터가 사뭇 다르다.
집결지 시청에서 답사객을 실은 버스는 도심 탈출을 꿈 꿔온듯 냅다 줄행랑을 친다.
휴일인지라 막힘이 없어서 더 좋다.
평동을 지나고 드넓게 펼쳐진 비닐하우스 밭을 지나고 버스가 도착한 곳은
나주 시청 바로 아래에 자리잡은 완사천이다.
고려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 왕건과 장화왕후의 인연이 맺어진 곳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바로 물에서 시작됨에 남녀의 인연 또한 물과 뗄래야 뗄수 없음을 또 한번 확인한 곳이다.
완사천에 빙 둘러서서 고려 역사를 더듬어 본다.천년고도 목사골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왕건과 오씨 처녀의 만남이 길라잡이의 구수한 입담에 옮겨지니 더욱 귀가 솔깃해진다.
그냥 아주 작은 샘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샘이었다.말간 물 흐르는 곳에 푸른 이끼가 세월을 읽게 한다.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포구 영산포 대교를 가로 질러 너른 들을 스치니 순식간 반남고분군이다.
세월 속에 묻혀진 오래된 이야기 흠뻑 젖어든 시간이다.
버스가 달리니 남도의 소금강이라는 월출산에 달려든다.뿌연 안개에 좀체 그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 산인데 송두리째 그 모습을 드러내며 답사객을 반기다.아스라히 구름다리도 눈에 들어온다.
강진가는길 무위사쪽에서 바라본 월출산이 장관이다.
강진 이야기에 흠뻑 빠졌더니 금새 백련사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산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천연기념물로 묶인 동백숲에서는 붉은 꽃이 만발이다.
숲이 우거진 탔일까? 산새들의 지저귐도 어느때보다도 기운차게 들려온다.
동백숲 걷는 마음이 통째로 떨어진 꽃잎마냥 처절하다.
백련사 범종각에서 바라본 구강포는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목탁소리 스님의 불경 읽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오솔길을 호젓이 걷는다.다산초당가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그리고 길지도 않아서 지루함이 없으니 사색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다.
천일각에 올라 서서 정약용의 맘을 헤아려본다.흑산도로 유배간 약전 형을 그리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솔가지 사이로 언뜻 비치는 구강포는 송두리째 그리움이다.
다산 초당 툇마루에 앉아 시대를 거슬러 오른다. 울창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바람에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기운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주인없어도 석가산의 폭포는 쉼없이 흐른다.
귤동 마을에서 먹는 점심은 시골 밥상마냥 맛나다.
버스에서 내려 진도대교를 걷는다 다리 아래를 굽어보니 울돌목의 소용돌이가 몸소 느껴진다.아찔하다.
들녘은 대파 숲을 이루고 파릇파릇하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맘도 몸도 바쁘다.두엄 내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이른 봄기운이 느껴진다.
소치 허련
남종화맥의 산실인 운림산방 가는 길마다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풍경화로 다가왔다 지나간다.
진도에서는 개도 그림을 물고 다닌다는 웃으갯 소리가 그냥 스치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수많은 화가가 탄생할수 있었던 것은 풍천 허씨의 화맥이 그 주춧돌 역할을 했음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첨찰산 자락에 자리한 운림산방은 쓸쓸함이 묻어난다.한여름 첨찰산의 푸른 숲과 어우러졌던 화려한 자미화를 가슴에 새겨두고 있음이리라.
작년 가을 문학기행때 잔디밭에 앉아 듣던 진도 국악원 단원들의 구성진 가락과 몸짓은 스피커에서 울려퍼진 은은한 음악이 대신한다.
살 오른 연못의 물고기는 발소리에 떼로 몰려든다.
때때로 먹이를 던져주던 인간들의 후한 인심에 익숙한 무조건적 반사랄까?
남종화 이야기에 길라잡이는 할 이야기가 많다.초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듣는 얘기는 오랜 시간들어도 지루함이 없다.
유물전시관을 둘러보고 우리의 답사는 막을 내렸다.어쩌면 숨막히게 한달음에 달려온 남도 답사였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에는 남도민의 멋과 문화가 송두리째 드리워져 있었다.
진도 사람 누구라도 소리를 할줄 안다는데 소리를 듣지 못함을 아쉬움을 대신하는 길라잡이의 구성진 소리가 버스를 따라온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저기 가는 저 처녀 엎으러나 져라
일서나 주는 듯이 보듬아나 보자
서방님 올까 봐 꾀를 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병이 났네
아리 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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