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음을 두고 왔네-익산답사후기2006.11.13

클레오파트라2 2010. 3. 27. 22:52

때늦은 답사인지라 집 나서는 발걸음이 첫걸음부터 결코 가볍지 않다.
11월 스치는 바람엔 찬기운이 묻어난다.
옷깃을 파고드는 아침 찬 기운에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게한다.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항상 작은 설레임을 갖게 한다.특히나 익산행은 초행인지라 기대하는바가 컷다.
남도의 익숙한 문화와는 또 다른 그 무엇을 볼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예정 시간보다 20여분 지체돼서야 버스는 도심을 탈출하듯 빠져나갔다.
텅 비어버린 시골의 들녘에는 쓸쓸한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만큼이나 묻어 난다.
일찍 수확했던 벼 구루터기에는 푸른 새싹이 올망졸망 피어오른고 있었다.
도심속에서 지내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둔감할수 밖에 없는데 간간히 마주치는 시골 풍경은 망각의 강 저편에 잠재워 둔 세월을 더듬게 한다.
또 속절없이 한해를 보냈구나 싶으니 허망한 맘 숨길 수 없다.
초행길에 헤맬까봐 톨케이트까지 나와서 기다리는 익산의 황호일 선생님은 인상적이었다.
두두마기를 곱게 갖춰 입은 모습은 단아 그 자체라고나 할까?
먼저 발길을 멈춘 곳은 왕궁리 유적지다.
여기 저기 정리 되지 않은 발굴현장들이 눈에 들어온다.거대한 5층 석탑앞에 섰다.
벚나무의 앙상한 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민 석탑은 한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왔다.
탑은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보아야 그 참맛을 안다는데 항상 보듯 그냥 둘러 볼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니 더욱 우람한 탑이다.세월의 흔적을 대신하듯 훼손된 부분이 고스란히 눈에 띈다.
거대한 돌 여럿으로 빗어낸 석탑은 어느 장인의 손끝에 매만져서 이토록 아름다운 탑이 되었단 말인가?
전시장에서는 발굴현장에서 나온 유물들을 볼수 있었다.통일신라와당과 비교된 백제 와당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통일 신라와당엔 볼률감은 있을지언정 멋은 없었고 백제 와당에는 간결미가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아야만 볼수 있는 차이란다.
시들어버린 풀들이 무성한 길 없는 길을 한참을 걸었다.성벽돌들이 비닐로 덮혀져 있었다.수 많은 돌들도 이어진 성벽임을 한눈에 알수 있었다.일제시대때 이 성벽의 돌들이 많이 사라졌다니 아픈 역사의 단면을 이곳에서도 익을수 있었다.
고도리 석불입상은 지명이 익숙했던 탓인지 친근감이 드는 곳이었다.
들판에 묘처럼 봉분을 쌓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는 석불입상은 허약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음과 양의 조화를 실은 직품이다.볼륨감이라고는 전혀없는 투박일색의 작품이라지만 소박한 민간신앙의 단면을 익을수는 있었다.
쌍릉으로 향했다.백제 무왕와 선화공주묘라고 한다.거대한 봉분이 그 사람의 살아 생전의 지위를 말해주고 있었다.
서동요를 떠올리며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에 대해 한번 곱씹어볼수 있는 길이었다.
묘로 가는 길에 만나 솔바람 소리와 솔가지 밟는 소리가 무척이나 좋았다.
솔향내음에 흠뻑 취할수 있었던 길이었다.
주변의 경관을 다듬는걸 보노라니 곧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함을 벗어날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연동리에 있는 석불 좌상을 보러갔다.
석불 초등학교 운동장에 버스를 세우고 석불사라는 작은 사찰에 들었다.
주인없는 곳에 무례한 행동인줄 알지만 닫혀진 대웅전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불교사상 가장 큰 규모의 광배를 가진 석불이라는 해설자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도 될듯 싶었다.
정말이지 대단히 큰 광배였다.
목이 없는 투박한 불상 화불들과 화염문도 육안으로 볼수 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불상 뒷면까지도 훑어보는 영광을 가졌던 곳이다.
거대한 돌덩이 위에 단단히 앉은 불상, 그 장엄함에 감히 만져보고 싶었다.
드디어 마지막 답사지 미륵사지
말로만 책으로만 많이 보았던 미륵사지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유구한 세월 그 곳을 지켰던 탑은 해체 복원중이었다.거대한 조립식 건물에 포위 당한듯 갇혀 있었다.
벌써 몇년째 복원중이라는데 이제 1층 옥개석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언제 복원이 될지 미지수란다.대신에 현대식 탑이 공룡처럼 버티고 섰다.
연못에 비친 탑과 당간지주가 버드나무와 어울려 운치가 있다.
하대석만 동그마니 남은 석등 앞에서 해설자는 참 열성이다.
돌멩이로 맨 땅에 석등 모형을 그렸고 그 석등의 하대석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터였음을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초석들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 가차이까지 가서 절터를 굽어보니 그 규모를 다시 한번 실감나게 한다.
한창 번성했던 백제 불교의 위상을 더듬어 보아도 무리가 없을듯 싶다.
미륵사지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주차장 한켠의 잔디에 앉아 답사일정을 마무리 하는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하다.
미륵사지에 ,아니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노신사를 통해서 짧은 하루였지만 배울게 많았음을 말해 무엇하랴!
노신사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을 두고 왔던 익산행이었다.
2006.11월13일 익산 답사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