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산에 오르다2008.12.25

클레오파트라2 2010. 3. 27. 23:19

이런말 쓸 나이가 아닌것은 분명한데 이런 말을 써야겠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 말이다.

녀석들 다 크지 않은듯 싶은데 딴에는 다 컷다고 생각하나 보다.

각자 행동 할때만 말이다.

며칠전부터 크리스마스 뭐할거냐고 다그치는 아이들에게 그냥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봐서 이브에 케익이나 자르자고 했지.

그랬더니 녀석들 모두 약속을 잡아버렸다.

나만 홀로된거 있지.

믿는 자도 아닌지라 특별한 크리스마스 있었던 바 아니기에 전처럼 그냥 보낼 밖에.

그런데 좀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나가면 나만 홀로 남을텐데 억울하지

그래 무등산에 오르기로 했다.

여기저기 함께 오를 동행인 찾는 문자를 보냈건만 묵묵부답이더라.

하는 수없이 그냥 혼자 오르기로 했다.

늦잠 자도 좋은 크리스마스에

세상에나 신새벽 5시에 깨었다.

산에 가는데 김밥은 싸야 할 성 싶었다.

김밥 싸고 시간 남아서 모처럼 아침에 라디오를 들었다.

자취하면서 끼고 살았던 라디오인데 분주한 아침에 부대끼고보니 좀체 못 듣는데

모처럼 듣는 라디오 그렇고 그렇다.진부하다고나 할까?

연애인들 나와서 시끌벅적이다.완전 말장난이구나.

8시30분

집을 나섰다.

잿빛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흰 분말가루 흩뿌릴듯 싶은 날씨.

개인적으로 무지 좋아하는 날씨다.아니 맑으면 맑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좋다.

한마디로 줏대없는거지.

스치는 바람이 매서운 걸 감지했기에 단단히 준비하고 나선길

운좋게 버스는 금방왔다.

거침없이 달려준 버스덕에 평소 40여분 걸리던 증심사행을 20여분 단축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쉬는 날 이른시간 이런저런 것들이 빚어낸 합작품이겠지.

산 좋아 기어든 사람들 무지 많더라 거기다 부지런까지 한 사람들로 추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인산인해.

삼삼오오 짝지어 가는자도 많았지만 호젓이 혼자 오르는자도 있어 대략난감은 천만다행으로 변했다.

오히려 기다리는라고 시간죽이고 수다 떠느라 자연을 놓치는 단체 산행보다 혼자라서 더욱 좋더라.

1년에 무등산은 계절별로 해서 4번 오르리라 나름대로 작심하고 살았는데 올해는 딱 2번만 올랐다.

엎어지면 코 닿을곳에 있어도 쉽지 않은 산행이다.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원........

중머리재 오르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나무가 없어 바람을 송두리째 맞으니 추울밖에.

중머리처럼 나무없이 민들민들하다고 해서 중머리재라더니 맞는 말인가보다.

증심사서 중머리재까지 딱 1시간만에 올랐다.

40여분 올라 장불재 도착했다.장불재라고 그 바람 예외일 수 없겠지.

더 높은 곳이니 바람의 강도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더라.

그동안 정비사업으로 입산통제했던 입석대 서석대가 코 앞인데

내 몸이 날라갈 듯 바람 세지만 안 갈 수 없지.

남들 가는데 나라고 못 갈리 없지.

오래전 어릴적 시골서 만났던 엄동설한이라는 말을 끄집어 내야했던 산행이더라.

길은 꽁꽁 얼고 바람불고 손 시리고

뭣하러 올라왔나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긴 했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건넌 강이었다.

하는 수없이 앞으로 전진할 밖에.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는데 오르는것이야 어찌 오르지만 내려갈 길이 막막했다.

아이젠 없는 준비없는 산행을 아마도 탁해야할듯 싶었다.

서석대 오르는 중에 만난 눈발은 나에겐 화이트크리스마스였다.

저멀리 장불재 길이 훤하게 보이더니만 삽시간에 눈보라로 뒤덥혔다.

한치앞도 안보이는 눈보라 그 속에 갇혔어도 행복했다면 우스울까?

사실 무등산에서 눈 만나기 쉽지 않거든

금새 가까이 보이던 천왕봉 정상도 흔적없이 사라졌다.아까 보일때 찍을걸. 나중에 더 좋은 곳에서 찍겠노라고 남겨 뒀던게 미련맞은 짓임을 알았다.

서석대에 서고보니 세상천지 눈이다.

나무도 눈꽃으로 옷을 갈아입고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발아래 풍경도 모두 설경

'날 참 잘 잡았지'

돌아갈 길을 걱정하기보다는 매서운 눈보라가 더 좋았다.

산에 가면서 왠 목도리 스스로에게 타박했는데 목도리 챙겨가서 아주 요긴하게 잘 썼다.바람 막는데 목도리만한게 없더라.

살금살금 기듯 조심스레 내려왔다.역시나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는게 더 힘들지.

장불재 어디메쯤서 점심을 할 생각이었는데 주책없이 불어재낀 바람에 엉덩이 붙일 곳을 찾지 못했다.

정확한 배꼽시계는 울었지만 어쩌겠어? 바람막이 되는 곳을 찾을수밖에

장불재서 한참 내려오는 바람없는 곳이 있더라.

사람맘은 다 똑같은가봐.

많은 사람들도 그 자리서 점심 먹더라.

눈 내린 바위에 걸터 앉아 먹는 김밥

맛이야 있겠어 배고파 먹었지.

너무 추워 얼른 철수했다.

그리고 중머리재 억새밭에 와서 둥지를 틀었다.

아니 내가 튼게 아니고 누군가 앞선 자가 만들어 놓은 둥지에 허락없이 자리를 잡았다.

아무나 앉으면 그게 내자리인곳이 바로 억새밭이지.

억새밭 정말 아늑하더라.해 가까이 있으니 따사롭고 바람막아주니 이보다 좋은 명당 없겠지.

김밥 라면 커피 뜨신걸로 채우니 추위도 저만치 물러서더라.

큰 보온병 욕심내서 끙끙 지고 간 보람이 있었지

서석대서 손이 너무 시려 뜯지 못했던 일회용커피 그곳에선 거침없이 단방에 뜯었다.

저멀리 장불재 서석대 보이는데 어찌 갔다왔을까 싶더라니까.

아마도 포만감에서 오는 게으름이 앞서 나갔기 때문이겠지.

꽁꽁 얼었던 길은 이제는 질척거림으로 조바심 나게 하더라.

딱 6시간만에 하산이다.

9시17분 올랐던 무등산

버스종점까지 오니 3시20분

사진 찍느라 좀 여유를 부리긴 했지만 타이트한 산행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청승맞게 산에 갔냐고 할지 모르지만 혼자만의 산행 호젓해서 좋았단다.

어쩌면 늘 혼자서 산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