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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체험이라고?

클레오파트라2 2022. 7. 9. 16:53

암흑 체험이라고?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더운 날 잘 지내느냐? 안부를 물으며 암흑 체험 있는데 할 거냐 묻는다.

당연히 콜이다.

평소 인생도 행복도 샐프다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좋은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다.

사실, 한 달 전쯤에 암흑 체험 기회가 있었는데 오래전에 잡힌 일정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었다.못내 아쉬웠던 차에 연락이 왔으니 흔쾌히 콜 할밖에.

퇴근 후 지인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첨단에 있는 모 식당이다.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모기업의 후원으로 암흑 체험을 한단다.

암흑 체험에 초대받은 이들이 하나둘 모이고

드디어 불이 꺼졌다.

커튼을 쳐서 외부의 빛까지 완전히 차단하니 깜깜나라다.

각자의 식탁 앞에 놓인 저녁을 먹으란다.

우선 깜깜하니 잘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를 모르겠다는 속담이 퍼뜩 생각났다.

까만 봉지에 가려진 것들을 더듬어서 드디어 도시락을 열었다.

숟가락 젓가락 찾아서 일단 뭔가 잡히는 대로 집었다.

먹어보니 돈가스인 듯.

먹어본 기억이 있었던지라 돈가스인줄 알았던 거다.

조심스러웠던 젓가락질이 서서히 안정궤도에 들었다.

콩자반도 단무지도 밥도 잡채까지 잘 집어 먹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다 먹었다.

식후에는 장애인 공연팀의 공연을 들었다.볼 수 없으니 청각에 온전히 집중해서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서 듣는 노래는 여느 가수 못지않다.

앵콜곡으로 타이타닉 ost까지

너무도 감명 깊게 보아서 세 번이나 다시 본 영화의 장면들이 음악으로 인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오감체험 시간.

또 다른 까만 봉지에 든 것들을 진행자가 모양을 말하면 만져서 하나씩 꺼내 보았다.

바스락거리는 사탕을 까서 먹었더니 자두 맛이 났다. 물론 한 가지 사탕인데 별의별 맛이 다 나왔다.봉투 속의 물건을 꺼냈더니 돈이 나왔다.얼마짜리인지는 맞출 수 없다.시각장애인을 위한 돈에 표식이 있다는 걸 듣긴 했는데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시각에 많이 의존하고 살았기 때문이리라.

백지에 편지를 쓴다.그 잠깐 사이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쓰라는데 당연히 오늘 그 자리로 날 초대한 지인에게 썼다.뜻밖의 의미있는 초대에 감사하는 마음을 듬뿍 담긴 담았는데 글쎄,

어둠 속에서 쓰니 분명코 삐뚤빼뚤일 게다.

오감체험까지 끝내고 소감 나누기를 한다.누군가 먼저 하라고 해서 내가 먼저 얘기했다.

암흑체험이니 당연히 빛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신체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까지 얘기했다.

돌아가면서 몇 사람들이 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시간 감각은 이미 멈춰버린 지 오래다.

드디어 불이 켜졌다. 눈이 부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다.

눈이 부셔서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다가 서서히 빛에 노출됐다.

어둠 속에서 행해진 행동이 불빛 속에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다 먹은 줄 알았던 도시락엔 멸치볶음이 고스란히 남았다.처음부터 없었던 반찬인지라 손도 대지 않은 것이다.

편지를 보니 그 어둠속에서 겹치지 않고 잘 썼다.

뒤늦게 만난 암흑 체험은 잠시나마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말해 무엇하랴!

체험 후기를 잘 나누었다고 지인 20명을 초대할 수 있는 행운권을 받았다.

누구에게 이 기회를 줄까?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수많은 지인들이 벌써부터 머리에 떠오른다.

널 위해 준비했어.암흑 체험,함께하고프면 손들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