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야 이뤄진다.
맞는 말이다.꿈조차 꾸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더 나이들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했으면 하는 맘이 한 켠에 자리 잡은 것은
4년전쯤 일게다.
산을 좋아해서 지리산 종주를 여러번 했다는 녀석의 말에 "나도 지리산 종주 하고프다"
얼결에 했던 말을 흘러 듣지 않고 함께 가자고 했었는데
어찌 어찌 못 갔다.
아쉬움이 무지 남았지만 타임밍이 허락지 않으니 일찍 포기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지냈는데......
시골 동창 녀석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지리산 종주를 했다는 것이다.
뒷북을 쳤다.
"나 좀 데려가지 그랬니?"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친구에게 지리산 종주 얘기 꺼낼 시간도 없었을 터인데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알았으면 함께 했을 것을 이미 놓친 버스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모임서 지리산 종주 얘기가 나왔다.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몇 모인 게다.
"내친김에 그럼 가자'
해서 잡은 날이 6월 30일
본래는 화엄사서 대원사까지 지리산 종주를 생각했는데
우리의 일정은 성삼재서 중산리까지로 잡았다.
날 잡아 놓고 소풍 기다리는 아이처럼 손꼽아 기다렸다.
너무도 빨리 잡힌 일정에 꿈이 이렇게 빨리 이뤄져도 싶나 의아심이 들 정도
종주하겠다는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동행인들에게 비가 와도 가냐는 질문은 할 수 없었다.
혹시 비 때문에 안 갈까봐서.
장마전선 얘기는 꺼내지 않고 기분좋게 출발했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걷는 것도 운치 있다는 누군가의 낙관론을 의지하면서
9시 문예회관후문서 미팅인데 8시 미팅인줄 착각하고 8시10분 전 도착
빨라도 넘 빨리 온걸 뒤늦게 알았다.하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예술회관 벤치에서 보냈다.
9시 출발 시간에 약속 장소로 갔건만
결국 일행들 도착은 9시30분
드디어 지리산 종주 출발
남원 인월에 차를 세우고 인월 사는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성삼재로 향했다.
굽이굽이 오르는 계곡은 좋은데 물은 이미 마른지 오래다
그 사이 소낙비라도 한차례 내렸는지 숲의 나무는 싱싱하다.
촉촉히 젖은 험하지 않은 산길 걸어서 노고단까지 가기는
그야말로 껌이다.
산보하듯 기분 좋은 출발
어느해 여름이던가 처녀치마가 만발한 노고단을 걸었던 적이 있고는
노고단은 두번째 만난다.
삽시간 몰려든 안개에 보이는 게 없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목 축이고 드디어 출발
지리산 종주의 시작이다.노고단 고개 넘어
임걸령,
샘터가 있으니 밥 먹기 딱 좋은 곳이다.
각자 싸 온 것들을 꺼내 놓으니 산속의 진수성찬이다.
달걀이 든 찰 김밥에 편육 막걸리
와우!
최고의 점심이다.
임걸령 샘물서 시원한 물 벌컥 마시고 물병에 채우고 출발
밥 바로 먹고 산행이 버겁다는 걸 알지만
많이 쉴 수도 없다.숙소인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한없이 걸어야 함으로
흙길에 돌길
무등산을 자주 올랐던 때문인지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다.
토끼봉 찍고 연하천 가기전 일행과 동떨어졌다.
반야봉을 보기 위해서
가파르니 헉헉 거린다.더군다나 비까지 보슬보슬 내리고
막걸리 한사발 먹은 게 확 올라와서 반야봉 제대로 오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될 판.
어러다 무슨일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잠시 쉬어가기
역시 힘들면 산은 쉬어가는게 맞다.
빗줄기 더 굵어져도 걸음을 재촉할 수도 없다.가파르고 빗길이고 안개끼고
아주 악조건이다.철계단 오를 즈음엔 아찔함까지도
반야노을이 환상이라는데 반야노을 꿈도 못 꾸었다.
단지 그곳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
반야봉 이정표 안고 인증샷 찍고 바로 내려왔다.
안개가 모든걸 보듬고 풍경을 내주지 않으니 어쩌랴!
아쉽지만 하산!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표가 돼 버렸다.
많이 걸은 때문에 서서히 다리가 아파오니
이정표상의 1km 산행은 참으로 멀기만 했다.
언젠가는 나오게 마련일 숙소 연하천 대피소가 얼른 나왔음 하는 맘뿐
걸음은 서서히 더뎠다.
데크를 한없이 내려가니 드디어 집이 보인다.
산속의 집이라면 대피소 말고 무엇이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빗속에 첫날 숙소인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6시45분
등산화까지 흠뻑 젖어버린 산행이니
대피소는 최고의 안식처
본래는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라는데 비 때문에 취소를 한 때문인지
잠자리가 여유있었다.
저녁은 애써 지고 올라간 장어구이
돼지고기 수육
마가목 담금주
이보다 맛난 만찬이 있을까?
지리산엔 계속 비는 내리고
술보다는 빗소리에 더 취한 밤이랄까?
적당히 취한 목소리로 누군가 들려주던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를 낭송해 주는데
와~~
지리산에서 지리산 시를 만나니 지리산답다라는 말은 이때 써야할 듯~~
비 덕분에
시 덕분에
사뭇 감동적인 첫밤이었음 말해 무엇하랴!
뒷날의 이른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든게 11시30분
힘든 산행 덕분에 단한번의 뒤척임도 없이 깊은 잠을 잤다.
피곤이 가져온 단잠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