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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짧은 시간 그리고 긴 여운-

클레오파트라2 2015. 2. 5. 23:41

아이들이 크면 좋을줄 알았다.

입시전쟁으로부터 벗어나고 대학생이 되면 시간 많으니 함께 할  시간 또한

많을 것이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고나 할까?

다섯식구에 일주일이면 모두 모여 저녁 한끼 먹기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매주 토요일은 약속잡기없기였을까?

그렇게 정해두어도 꼭 누군가는 빠지게 마련인 저녁식사이니

가족여행인들 감히 꿈꿀까?

하지만 꿈꿨다.다섯명 다 참여는 어려우니 참석가능한 가족끼리

그게 무슨 가족여행이야 할지 모르지만 어떻든 우리에겐

가족여행이었다.

군대간 아들 녀석 쏙 빼니 가능했다면 아들에게 무지 미안하긴 하다.

낼 모레 휴가 나오니 그 때 함께 할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예측불허의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법

그러니 그때그때 상황되는대로 떠난 여행이면 족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보성으로 떠나기

콘도예약을 하고나니 이제 떠난다는 게 실감나는데

그 실감도 잠시다.

예약하고 하루 지나서 딸이 주말 알바를 뺄수없다고 하니

급 평일로 변경.

다행인것은 하루전 변경인데 방이 있단다

천만다행이다.이게 변경이 안되면 가족여행은 물거품이 될뻔 했는데.....

빛축제가 열리는 보성의 녹차밭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날은 어둡고 그러면서 눈보라 날리고

떠나?말어? 고민되게 했지만 고민끝에 내린 답은 떠나기다.

익숙한 길인지라 무조건 떠나기

도착하고보니 가길 잘했다.

전망좋은 곳은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데 가히 장관이었다.

야경의 녹차밭은 처음이라서 더 감동적이었다고나 할까?

세게 비바람 몰아쳐 힘들었지만 기어코 녹차밭을 걸을수 밖에 없었다.

풍경이 좋은 곳에서 사진! 놓칠 수가 없었다.

칠흑처럼 어두워서 더 빛나는 공간, 그 빛도 좋았지만

허기진 배를 달래준 간식이다.

갓 기름에서 튀겨낸 핫도그 케찹에 설탕까지 뿌려 먹으니

30여년전 시골읍내 빵집에서 사 먹던 그맛이 되돌아왔다.

율포 밤바다가 훤히 보이는 숙소에서의 삼겹살파티 ,

아니 파티랄것까지도 없다.그냥 장소의 이동뿐이다.

집에 있던 것들이 고스란히 옮겨졌으니

맛은 장소에 따라 다름이 분명했다.

푸지게 저녁 먹었으니 소화한다며 가족끼리 밤바다 산책까지 즐기는 여유는 여행지라서 가능했다.

뒷날 이른시간에 깨어 해수온천까지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수온천은 여행의 백미일수밖에 없었다.

콧물 감기로 며칠 고생하던 감기를 온천욕으로 훌훌 털고 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즐기는 여유

사실은 간만이라서 더 좋았다고나 할까?

아침 겸 점심 먹고 바닷가서 놀기.

겨울바닷가 생각보다 따뜻했기에 놀기에 제격

밀려오는 파도피하기,모래사장 달리기 ,모래성쌓기,이름쓰기

고운모래가 그리도 많은 놀거리를 제공할 줄이야!

어쩌면 내 유년의 추억을 곱씹는 시간이었다는게 맞겠다.

추억은 가슴에 그리고 사진에 남는다는 걸 알기에 마구마구 다양한 포즈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만난 쌍봉사는 여행의 절정 내지는 금상첨화랄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엔 설경이 펼쳐져서 더 마음을 끌었다.

가는 길이 얼어서 가슴 졸이긴 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설경의 쌍봉사가 그렇게 이쁠 수가!

예닐곱번의 방문이지만 설경의 쌍봉산는 처음이라서 더 좋았다.

인적끊긴 산사란 그날의 쌍봉사를 이름이리라

겨울속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

나목에 왠 꽃인가 싶을 정도로 눈이 탐스럽게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와우~~~~

그날이라서 보여주는 풍경임에 분명했다.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미소가 어찌나 온화한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고 편안해져서

아주 오래도록 보고 또 보았다.

어쩌면 그 미소 보고파 다시 걸음 했는지도 모른다.

절집마다 열어서 부처님 안부 묻듯 쳐다보고 합장하고

아이들 발걸음을 오래 붙잡게 한 것은 지장전 벽화다.

시왕 앞의 죽은자들 업경대를 통해서 살아 생전의 업을 바라보질대

업 앞에 자유로운 영혼이 없을 수 밖에

불지옥 한지옥 열지옥......

살아 있을 때 우리가 어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정말 무섭네.죽으면 우리들이 저런 곳에 가는거야?"

다 큰 녀석들 끔찍한지 묻길래 그냥 웃었습니다.

염화시중!

쌍봉사의 자랑거리 철감선사부도비를 놓칠수없지요.

싸문싸문 대숲을 휘돌아 갔습니다.

간밤이 눈보라에 대숲은 소란스러웠나봅니다.

길가로 넘어진 대나무 두 그루가 간밤이 몸부림을 말없이 이야기하네요.

대나무를 넘어서 철감선사부도비에 오릅니다.

급경사가 숨 가쁘게 해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극치라고 표현하는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돌을 흙 주무르듯 그렇게 섬세하게 다양한 표현을 해 놓았습니다.

문고리,비익조,기왓골 어느것 하나 놓칠 수가 없습니다.

몸수색하듯 돌아가면서 샅샅히 훔칩니다.

부도비의 가치를 성토하듯 건네건만 딸들은 우이독경입니다.

그 곳의 풍경이 더 좋은지 사진 찍기 바쁘네요.

같은 공간에 있다면 맘이 다 같은 곳에 있으리라는 생각은 분명 오산이더군요.

잘난 물건 아주 잘 보고 가는 길

흐뭇했습니다.

여행의 맛은 느림의 미학이라는말 완전 공감하고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짧고 가까운 반나절 여행인데 그 어느 여행보다 알찼습니다.

어쩌면 가족이 함께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았다면 또 다시 떠날 것을 기약해야 하는데

감히 떠날 것을 기약하지 못했습니다.

흩어진 각자의 시간을 다시 모으는데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할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