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산 지 참으로 오래 되었습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를 그럴싸하게 둘러대고
내 안의 나를 놓은지 오래였습니다.
열손가락을 헤아리고 또 헤아려도 부족할 만큼 참 많은 시간의 주말을 반납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어느날 부턴가는 은근슬쩍 반납한 주말에 대한 갈증이 일었습니다.
단풍이 곱게 들던 가을날에,
안개 자욱한 날에
그리고
종일 비 내리던 여름날에
홀연히 훌쩍 떠나고픈 맘이 정말이지 억제할수 없을 만큼 내 안에 용솟음 쳤지만
더 큰 그 무엇이 언제나 기꺼이 잠재웠습니다.
다른 멋진날을 기약하면서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니 반납한 주말도
되돌아 왔습니다.
오래 애타게 기다려왔던 만큼 알차게 써야한다는 의무감이 일었습니다.
뭘할까?
우선 순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동안엔 주말이 생기면 뭘하겠다고 손꼽긴 했는데
눈 내리는 날씨가 모든걸 순식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앞뒤 잴것없이 무조건 무등산이어야 했습니다.
내게 쉼은 무등산이어야 했습니다.
저만치 10능선쯤에 내려앉은 설경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 싶었습니다.
마침 가고잡던 터 눈까지 쌓였으니 맘도 몸도 벌써 그곳으로 향할밖에요.
찰밥에 라면하나 귤 보온병 이정도면 족했습니다.물론 추위를 막기 위한 뜨신 복장은 필수지요.
혼자라도 좋았습니다.
이른 시간의 산행이라면 혼자라서 더 좋았습니다.8시 부지런떤다고 떨었건만
벌써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여 추울까봐 싸고 또 쌌던 몸은 오르수록 달아오릅니다.
장갑속의 손을 산속에 내 놓으니 그리도 시원합니다.
겨울 산은 숲이 훤히 보여서 좋습니다.
볼게 없으니 새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수 있어서 좋습니다.
즌작에 사람과 친해진 새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건만 멀리 날 생각일랑 접었나 봅니다.
새들에게 인간은 세상 밖의 일인듯 싶습니다.
장불재 오를즈음 바짝 긴장을 해야했지요.산길에 쌓인 눈을 보노라니 겁없이 오른 산행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무겁다고 아이젠을 챙기지 않은게 급후회스러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그냥 조심조심 하는수밖에요.
다른때보다 더딘 산행이 되어도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했습니다.혼자니 맘편히 속도 조절할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서석대까지 애써 오른 보람이 있었습니다.
눈 내린 산하는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무등산을 찾아도 내 설 곳은 또 있더군요.
중머리재 바람없는 곳에 자리잡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이라야 기껏 찰밥이 전부였지만 뜨건 라면과 함께 먹으니 일품이더군요.
뜨신 국물은 몸녹이기 제격이었습니다.
커피 한잔의 위력은 추우니 더 발휘대더군요.
하산길은 정말이지 몸을 사리며 내려왔습니다.
조심 또 조심
어찌나 긴장했던지
하산하고 보니 다른때보다 더 몸이 묵직했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또 눈내린 겨울산을 먼저 보았으니
이 겨울은 어지간히 견뎌낼수 있을듯 싶습니다.
혹여 눈이 아주 많이 내리거든
그날 월동준비 제대로 해서 또 오를 생각입니다.
아직 올 겨울 상고대는 못 보았으니 오를 이유 생겼지요.
돌아오는 길 버스 안 스팀이 어찌나 뜨시던지
스르르 잠들었는데 20분을 꼬박 잤습니다.
그 단잠이라니!!!
반납받은 주말
이렇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