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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부안은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클레오파트라2 2011. 11. 19. 18:41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이 맘을 바쁘게 한다.

"뭐야,이제 이 해도 얼마 안 남았잖아.한것도 없는데 벌써 올해가 다 가고 있는거야"

그냥 보낼순 없다.

아무리 바빠도 남들 하는거 따라하기라도 해야 묵은 체증이 내려갈 듯 싶었다.

번듯이 휴가라는 꼬리표 붙이고 떠날수 없었던 지난날 바삐 달려온 날들에 대한 회의가 불현듯

달력앞에 서고보니 들었다.

그래서 혼자 떠날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속에 묻혀 가기

혼자가 아니라도 떠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일이다.

열심히 살아온 나에 대한 보상 치고는 좀 알량하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챙기지 않고 입을 씻는다면

나는 나를 싫어할듯 싶었다.

아이들 치닥거리도 하기 전에 먼저 떠나는게 급부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먼저 떠나는것에 대해서도 이젠 익숙하다.

부담이라면 넘 이른 시간의 이동이랄까?

아니다.이른시간도 기꺼이 감수한다.떠날수 있음이 그저 고마울뿐이니.

더군다나 부안은 간만에 떠나지 않은가?

바다가 있고 내소사가 있고 곰소가 있다.

내겐 오래전 기억의 저편에 잠든 추억을 일깨우는 여행임에 분명하다.

잿빛 하늘은 광주만이 아니었다.첫발을 딛은 내소사도 잔뜩 흐려 있다.

전나무 숲이 아름다운 내소사에 대한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든다.

아마도 벌써 7년정도 묵은 추억이다.

난생 처음 했던 내소사 템플스테이

모든게 새로웠다.

새벽 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예불에 참여하고 108배를 하고

새벽에 촛불 켜서 연못에 소원등 띄우고

전나무 숲향이 송두리째 전해오던 그 새벽의 내소사는

절집의 모든 것들을 많이 느끼게 해주었었다.

7년의 세월속에 절집은 많이 변했으리라.

세월을 빗겨갔으면 더 좋겠고!

일주문 앞 아름드리 세월을 대변하는 느티나무는 기억속에 없다.

아마도 미처 추억속에 담지 못한 것일뿐이리라.

전나무 숲향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더없이 좋다.

특히나 새벽에 걸어서 더 멋진 인상으로 남았던 길

지나온 세월만큼 훌쩍 컸으련만 얼마쯤 컸으려니 감히 가늠을 못한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린 모습을 지난한 세월을 말없이 얘기할뿐이다.

전나무 숲 사이 감나무는 울퉁불퉁 완전 근육질이다.

전나무 사이에서 버티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쭉 뻗은 그길을 걷는 것은 사람을 정말 기분좋게한다.금세 날개라도 달았음 날아가고픈 기운을 담았다.

변함없음이 정겨운 절집이다.7년전 모습 그대로 모두가 그자리에 고스란히 있어서 좋다.

다만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문살은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게 한다.

오랜세월 비에 그리고 바람에 햇살이 부딪혀서 고색창연하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은 문살만이 아니다.대웅보전 안도 눈길 닿는 곳마다 느껴진다.

동자승이 목침 하나 숨겨서 빠졌다는 그럴싸한 이야기에 혹해서 절집안 눈여겨 보았더니만

역시나 목침하나 빈 곳이 눈에 들어온다.

100일 동안 단청을 칠하던 화공,

궁금해서 들여다 보니 새가 단청을 하더라는 관음조 이야기는 정말인양 빠뜨린 단청 부분이 있다.

부처님 뒤편의 후불벽화 괘불함까지 볼거리가 많은 절집이다.

그러니 기도공간인 절집을 그냥 지나칠수 없어 신발 벗고 조심스럽게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길 꺼리지 않는다.그 공간서 새벽예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후불탱화까지 눈도장을 찍고서야 절집 마당으로 나온다.

천년된 느티나무도,

몇개 남지 않은 까치밥이 달랑달랑 매달려있던 감나무도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고스란히 그대로인데 사람만 변해서 거기 서 있는 격이다.

템플스테이때 하룻밤 묵었던 공간도 변함없다.

저 멀리 보이는 암자 하나 잊을수 없다.

청연암

애써 올랐더니만 부안의 멋진 바다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었다.

카메라를 미처 챙겨가지 못해서 템플스테이 한 다른 부자팀이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었다.

108배를 하고 걸으려니 뒤에서 살짝 누군가 건들기만 하면 쓰러질 기운이었던 그 기억도 되살아났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기억의 편린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쳤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리웁다.함께 할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는....

다음은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이다.

한참을 걸어서 가노니 세트장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드넓은 바다다.

바닷내음이 절로 나는 곳

고향내음이라서 발걸음이 더 당기는 곳

썰물때라 물기먹은 바다가 그대로 드러난다.

잠깐 머물렀을뿐이데 그세 손에는 고동이며 소라가 한주먹 가득이다.

바다가 보이는 횟집서 먹는 점심은 식욕을 더 돋운다.

회도 바지락 국물도 게도 굴도

식탁에 오른 모든 것들이 거기 바다임을 얘기한다.

점심에 반주로 걸친 부안의 명품주 뽕주가 부안 여행의 흥을 더한다.

거기만이 바다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바다다.채석강은 더 멋져 사람을 주저앉게 한다.

숱한 세월 파도에 씻겨서 켜켜이  깎여진 바위는 자연이 빚은 완벽한 예술품이다.

여기가 바로 적벽이다.

흐릿하게 저만치 보이는 형제섬 위도도 눈에 들어온다.

앉은 김에 고향의 바다인양 고향의 주인인양 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적당한 돌을 골라 지천에 널린 굴을 깐다.

왕년에 고향 바다를 누볐던 실력이 나옴직하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몇번 돌을 두드렸더니만 영근 굴이 나온다.

쩍이 있긴 하지만 짭짜름한 그 굴맛은 30여년전 고향서 맛본 그 굴맛 그대로이다.

혼자먹기 아까워

열심히 돌길질을 했더니만 여러사람이 천연 굴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서툴긴 했지만 손은 역시나 언제든 훌륭한 도구가 된다.

마지막은 곰소항 시장이다.

이곳이야말로 바닷내음이 물씬 풍긴다.

없는게 없는 어물전시장

볼거리가 많아서 보는것만으로도 넉넉해지는 곳

주부들인지라 살것도 많다.

손에 손에 물건을 든  모습이 행복해보인다.

아마도 가족들 먹일생각에 벌써부터 그 행복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끝내 종일토록 해를 볼 수 없었던 여행길이라도

떠날수 있어서 행복했던 날,

돌아오는 길,

잿빛 하늘은 기어코 추적추적  가을비를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