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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아짐의 북경견문록2010.7.6~7.9 3박4일 여정기

클레오파트라2 2010. 7. 25. 23:44

벼르고 벼르던 북경 여행길에 오르는 날이다.

떠나는 곳이 어디든 일단 일상을 벗어난 떠남이란 설레이게 마련이다. 그 설렘으로 인하여 꼭두새벽4시30분 정말 자동으로 눈을 떴다. 한 번 잠을 깨고 보니 다시 잠들기 어려운터 꼼지락거려 아침을 준비해본다. 3박4일 긴 시간은 결코 아니지만 엄마의 부재가 표나지 않게 하려면 아니 표가 덜 나게 하려면 준비할게 좀 많은가? 없는 동안 음식을 더 많이 먹는것도 아닐진대 이것저것 부산스레 움직여 준비한다. 아침에 먹을 김밥과 초밥까지 준비하고 세 아이 보내고 보니 아직도 출발까지는 멀었다. 아침시간에 모처럼만에 라디오 음악 듣는 여유까지 부리는 호사를 누렸다. 지열이 한껏 달아오른 11시30분 여행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한낮에 떠나는 여행? 너무 더워서 보는 이도 부담스러운 여행길은 아닐까 노파심을 가지면서 시청으로 향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먼저 반긴다. 모두들 밝은 모습이다. 드디어

무안공항으로 출발이다. 낯익은 이 도시와는 잠시 이별을 고하노라 스치는 풍경들을 또 눈에 담는다. 쭉쭉 뻗은 서해안 고속도로의 덕분에 무안공항까지는 삽시간에 내달린다. 내 고향 땅에 들어선 공항이지만 늘 스치고 지나쳤을 뿐 발을 내딛기는 처음이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표가 무색하리만치 한산하다. 북적거림이 덜해서 이용객에게는 더 없이 좋은데 한편으로 적자공항 운운하는 게 눈에 보이는 듯 싶어 가슴이 아파왔다. 떠남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여유롭게 도착한 까닭에 많이 기다려야하지만 그 기다림도 떠나기에 즐겁게 기다릴 수 있다. 드디어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한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시야가 확 들어와서 좋다.조망권 좋은 창쪽은 아니라도 몸을 좀 기울이는 수고로움만 동반한다면 바깥 풍경이 훤히 들어오는 괜찮은 좌석이다. 비행기 맨 끝자리 가운데

솜사탕 같은 몽실몽실한 구름은 그 하늘에도 있었다. 한입 베어 물고픈 솜사탕 말이다. 바깥 경치 구경하고 기내식 먹고 그러니 1시간50분 비행시간도 쏜살같이 가 버린다. 타고 나니 바로 내린다면 너무 과한 표현이 될련지 모르지만 아무튼 금새 내려야했다. 막간을 이용한 꿀잠도 잤다. 기내담요 달라는 소리를 해야하는데 기내 타올 달라고 해서 스투어디스를 어리둥절케하긴 했지만 기내담요 덕분에 완전 숙면을 취했다. 아니 어쩜 시원한 맥주 한 캔의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기내 서비스인 맥주를 가져갈 요령으로 맥주를 달라고 했는데 오픈 된 세 캔의 맥주 때문에 황당한 사건이 있었던 기내였다. 금새 중국 도착이다.사회주의국가여서인가 싶을 정도로 입국심사가 꽤나 까다롭다. 사람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꽤나 오랜 시간 줄서서 기다려야했다. 입국심사하다 교대시간되면 인수인계하고 교대해야하는데 처음부터 여권을 다시 본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교대시간이 되니 정말 그랬다. 성질 급한사람은 제 성질에 못 견뎌할 판이었다. 어찌나 공항이 크던지 작은 기차로 움직였다. 공항은 사람과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었다. 북새통 그대로다. 가이드왈 혹여 일행을 놓치거든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서 애국가를 크게 부르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런 약속이라도 미리 해 두지 않으면 일행을 놓쳤을 땐 낭패이다 싶었다. 25명이 한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함은 분명한데 쉽지가 않다. 기차로 이동하는 사이 한사람이 기차를 타지 못해서 많은 이들이 다음 기차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첫출발부터 사람찾기다.다른 기차에서 일행 한사람을 찾기 위해 한참을 모두가 눈을 크게 떠야했다. 우리식구라 그런지 금새 눈에 띈다. 합류해서 나가는데 피켓 든 여행사 직원들의 행렬이 가히 장관이다.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놓치고 그냥 갈수도 있을듯 싶었다. 천천히 피켓을 훑고 한참을 가노라니 눈에 띈 여행사가 있다. 키가 훤칠한 인상 좋은 현지가이드가 우릴 반긴다.기다리는 버스로 이동 한낮은 벌써 지났건만 북경의 뜨건 지열이 확 달겨든다. 40도를 오르내린다는 북경의 여름 날씨가 바로 실감난다.

40여분 달려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북경의 유명한 음식 오리구이라서 잔뜩 기대를 했다.

현지식이라는데 음식이 느끼하다는데 걱정이 되었다.하지만 정작 식탁에 앉고 음식을 대하니 별로 부담스런 식사는 아니었다. 다들 먹을만 하다고 했다.특별요리라는 오리고기가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맛나게 먹은 첫 식사였다. 식사후는 중국 최고의 기예쇼라는 북경 써커스를 보았다. 2년전 금강산서 보았던 써커스와는 사뭇 다른 서커스였다.아마도 느릿한 음악 때문인지 스릴이 덜해서인지 은근슬쩍 졸음이 쏟아졌다. 아슬아슬한 그 무엇이 없어 긴장감이 떨어진 때문이리라. 예술서커스임에 분명했다.밤중인데도 북경의 밤은 뜨건 열기가 여전했다. 숙소인 크리스탈 호텔에 도착해서야 시원함을 느꼈으니 그 열기는 대단할 밖에.

여장을 풀고 한방에 뭉쳤다. 한국서 미리 챙겨온 간식들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잔치에 빼놓을 수 없다는 남도 음식의 진수 홍어가 중국까지 따라왔다.

중국서 맥주에 먹는 홍어 맛은 또 얼마나 일품이던지.

애써 챙겨온 김나현 선생님 덕분에 푸짐하게 여행의 앞 풀이를 넉넉하게 했다.

넘 늦지 않게 해산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외국 여행 간다고 너무 일찍 일어난 때문인지 룸 메이트가 씻고 들어서기도 전에 잠이들고 말았다. 소곤소곤 수다떠는 밤은 엄두도 못냈다. 중국땅이라고는 처음 밟아보니 내일 아침은 잔뜩 기대되는 날이었다.

 

알람을 6시에 울려준다고 했는데

알람이 울리기전에 맞쳐 둔 핸드폰 알람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

호텔서 아침을 먹고 7시30분 차량을 탑승했다. 앞뒤에 문이 있는 55인석 버스라 자리가 넉넉해서 이동하는데 편했다. 첫코스는 만리장성 말로만 듣던 만리장성으로 내달렸다. 세계7대 건축물로 꼽히고 달에서도 식별이 가능한 유일한 건축물이라는데 그 거창한 건축물을 보러가는 길이다. 버스 밖으로는 출근하는 북경사람들 모습이 눈에 띈다.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 무질서 속에 질서가 보인다. 한국에서는 꿈 꿀 수 없는 풍경 북경이라서 가능한 풍경이다. 자전거 탄 사람도 자가운전자도 여유가 있어보인다. 출근전쟁은 북경도 서울 못지 않은가보다. 출퇴근 시간 여기저기 막혔다. 저만치 달리는 도로에서 만리장성이 보인다.달리는 버스로는 만리장성의 감이 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직접 밟아봐야 감이 오려는지.......

드디어 만리장성 도착

와!!

세계 인종시장이다. 만리장성에 앞서 구경해야할 것은 세계 곳곳서 몰려든 사람들이 될듯 싶었다. 만리장성서 자유시간을 한시간을 주었는데 화장실부터 막혔다. 혹여나 오르는도중 화장실이 없을까봐 노파심에 너나 없이 사람들이 들리니 작은 화장실은 급만원 일 밖에.화장실서 10분 소비

맘이 바빠진다. 얼른 좀더 많이 올라야하는데......

그냥 앞만 보고 오를수 없다. 간간히 올라온 길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오르는 길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좁은 길은 많은 사람들로 인해 곳곳이 정체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만리장성 길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다행스런 것은 날씨가 받쳐준다는 것이다. 만리장성 기어코 오르라는 신이 계시인지 그날은 마침 날씨가 흐려 주었다. 장성을 오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른다는 만리장성 회사가 파업한 게 도리어 잘 되었구나 하는 묘한 심리가 작용할 정도로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아래서 보았을 때 저만치가 정상이려니 생각해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각이 나타나기를 여러 번 정작 끝은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많이 밟고 올 욕심으로 일행보다 더 많이 올랐다. 위로 올라가니 눈에 띤 화장실이 반가웠다. 그런데 그 반가움도 잠시 너무도 지저분해서 참고 뒤돌아서야했다.중국가면 화장실 문도 없다는데 실감나는 곳이 만리장성 위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거기까지 올라오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어서 기념사진 한컷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렸더니 외국인 부부가 나타났다. 사진 찍기를 부탁했더니 기꺼이 응한다. 그 기나긴 만리장성은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또 오리라는 단어에 무게를 실었다. 만리장성을 갈수 있는 곳이 세곳이라는데 그중 하나를 갔으니 다른 길로 가기 위해선 두어 번쯤 더 와야할 듯 싶다.힘겹게 올랐기에 최대한의 기념 사진 찍는 것은 당연지사. 무조건 많이 찍었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걸 실감하고 지내니 더욱더 사진에 얽매일 밖에. 만리장성서 독사진은 꿈도 못꾼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지 어쩔땐 액스트라가 더 많다.저만치 기차가 달린다. 일주일에 한번 몽골 가는 기차란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는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표현이 그르지 않을 듯 싶었다.그 거대한 명성의 뒤안길엔 만리장성을 쌓다가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넋이 함께하리니 생각이 드니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거대한 장성을 위한 숱한 희생양들의 결과물쯤은 될까? 어찌됐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긴 했지만 현재의 중국인들에게는 관광지로서 세계 사람들을 불러 들여 중국의 부를 축적하는데 한몫이 된다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한 듯.......욕심부리다보니 약속된 도착시간보다 좀 늦었다. 일행에게 미안했다. 전날 한 사람 때문에 늦은걸 많이 타박했는데 하룻 만에 역전되는 꼴이라니! 담부터는 서두르리라. 다음은 북경의 소계림이라는 용경협으로 이동했다.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도 좋은곳이란다. 들어가는 길부터 장관이다. 용경협이라고 빨간 글씨로 산자락에 새겨놓은 게 눈에 띈다. 협곡의 물을 막아 관광지로 만들어놓은곳 그곳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갔더니 어찌 저런 곳에 무엇이 있을수 있을까 싶은데 잔잔한 호수가 나온다.물위로는 유람선들이 떠 있고 하늘위로는 케이블카에 열심히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선상 유람이라! 비경속에 젖고 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끊어질듯 또 이어지는 협곡과 산들이 바위들이 아름다운 경치들을 품고 있었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온곳.만리장성이 인간의 위대함을 얘기한다면 용경협은 자연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하늘과 맞닿는 산자락도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풍경이었다. 하다못해 배가 지나갈 때 외줄에 의지하고 줄타기 하는 모습까지도.

유람선이 지나는데 잠깐의 쇼라지만 정말 아스라했던 묘기 중의 묘기였다. 유람선 타고 내려오는 동굴은 여름은 먼 나라 얘기인듯 시원하다. 에고~~ 그 길만 계속이어지면 좋으련만.

꽤나 긴 터널을 아주 즐거운 수다를 떨며 통과했다. 점심은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한다는 대형식당에서 현지식으로 먹었다. 느끼한 음식이라지만 서서히 적응해가는지 먹을만했다. 밀실같은 샵에 가서 우롱차등 여러 가지 중국차를 마시고 명13릉으로 갔다. 명황제 16명중 13명의 무덤이 있는곳이란다.80만 평방km라니 그 크기에 벌써 압도당할 지경이다. 가까이 보이는 건물의 크기가 위세를 그대로 대변한다.3대황제였다는 영락제 무덤을 보게 된 것이다.능 앞 촛불켜는 곳엔 세계의 돈들이 수북하다.13릉 둘러보고 오는 길에 차안에서 먹은 중국 복숭아가 별미다. 완전 맛이 든것은 아니지만 올해 처음 먹은 복숭아가 중국서 먹어보는 복숭아라서 그렇다. 중국인들은 평생 세 가지 소망이 있단다. 글씨를 다 모르고 죽으니 글씨를 다 알고픈 소망 중국 음식이 워낙 많은데 다 맛을 못보고 죽은 것 명13릉와서 보는것 중국 대륙이 그만큼 큼을 빗댄 표현일듯 싶다. 맛사지샵에 들러서 전신맛사지 받는 시간은 더욱더 즐거웠다. 피곤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시원함이 있었기 때문이다.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한편으로는 고향 떠나와 일찍부터 직업전서에 뛰어든 아직 앳된 아이들이 짠한 마음도 들었다 .그나마 난 24살의 장정에게 받아서 다행인데 아직은 어리디 어려보인 학생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빛과 그림자는 항상 동시에 존재한게 분명하다. 불고기 샤브샤브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귀소했다. 피곤한 때문인지 뒤척임없이 금새 잠들었다. 완전 숙면이다.

 

모닝콜을 듣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벌써 중국와서 3일째를 맞는다.호텔 창 밖으로 바깥 풍경을 보노라니 도시가 조용하다. 아마도 이른 시간이라서인가 보다.호텔식으로 조식을 해결하고 7시30분 출발

출근하는 북경사람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자전거도로가 넓게 확보된 게 부럽다. 자동차도로 바로 옆에 넓게 자전거도로가 확보되어서인지 안전이 보장된 도로였다.

주황색 옷 입은 사람들이 도로에 눈에 띈다. 아침 저녁 출퇴근 복잡한 시간에 차와 도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란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일거리 창출이 고민스럽다더니 그도 일자리의 하나란다.

8시20분 자금성 도착 두 시간을 걷는다니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할 판이다. 무장이라야 기껏 물 한 병 챙기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입구부터 복잡하다. 여기서야 말로 여행 깃발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워낙 사람이 많으니 드디어 가이드 여태 꼭꼭 숨겨두었던 깃발을 꺼낸다. 워낙 사람이 많으니 깃발을 잘 쫒아오란다. 깃발도 하도 많으니 헷갈리지 말 것. 이제부터는 완전히 깃발을 찾아서다.70만평이라는 넓은 공간도 그렇지만 바글바글한 사람에도 압도당할 판이다. 인공산 호피송도 독특해서 눈길을 끈다. 자금성에서는 정말로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 모두들 함께 움직였다. 가이드 따라 잡기다.가이드깃발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했다면 그 복잡함이 전해질 것이다.

마지막 황제의 배경이 되었던 그 자금성 앞에 서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종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건축물 다 볼 수는 없다고 한다.한정된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수박 겉핥기에 만족해야할 공간이었다. 궁전에 있는 전시물이야 다 그렇고 그런 것이려니 생각되었지만 아기사자가 엄마사자의 발바닥을 핥고 있는 조형물과 어도의 대형석조물은 인상적이었다. 우리 궁궐의 드무 역할을 하는 2000근~4000근 하는 큰 항아리가 모두38개가 있다니 그규모 가히 짐작할만했다. 자금성을 걸어나가다 보니 바로 천안문 광장이다.40도를 웃도는 천안문 광장이라지만 관광객은 그 더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무엇이 있어서 그 많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끌어들인 것일까? 중국민주화의 상징인 천안문 광장에 서고 보니 518민주광장도 떠올랐다. 규모면에서야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 뜻은 하나로 통하는 곳이다.광장 근처의 내노라 하는 건물들도 눈에 띈다. 중국 국가 박물관 인민대회당 모택동 기념당등이다.

모택동 기념당을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한다는데도 그 줄을 서고 있는 걸 보니 역시나 중국은 만만디 인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를 통해 듣는 중국의 문화는 귀를 솔귓하게 했다. 하나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성 싶었다. 간간히 전해주는 위트까지도 진실인양 받아들일 뻔 했다.낯선 나라의 문화는 그렇게 이방인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단 며칠 여행으로 거대한 중국을 다 알고 간다는 게 지나친 욕심인줄 알지만 혹여 한국에 와서 금새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라도 더 귀에 담고픈게 길 떠난 여행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니 현지 가이드의 일거수 일투족은 관심 그 자체일 수밖에.

이동중에 과일중의 여왕이라는 망고스틴을 맛보았다.그 맛이 환상이었다.처음먹어본 과일인지라 더 잊혀지지 않을 듯 ......부국해저서계박물관이라는곳에 갔다.북경최고의 아쿠아리움이라지만 우리의 63빌딩의 수족관 그리고 해운대 아쿠아리움과는 사뭇 비교되는 곳이었다.한마디로 시시했다.점심은 현지식이다.느끼의 진수를 느낄 즈음이다.이때 등장한 한국서 가져온 총각김치가 입맛을 되살렸다.적당히 익은 그 김치맛도 좋았지만 김치국물로 밥 비벼먹는 맛도 또 달랐다.

용화궁 티벳 사원엘 갔다. 우리와는 먼 라마교 사원이라 생각하니 많이 낯설었다.

열심히 부처님 전에 기도하는 현지인의 모습은 국경을 넘어서 어디든 똑 같구나 싶은 생각이들었다. 한낮에 들러본 라마궁은 그 더위 속에 피어오른 향만이 기억에 남을 듯 싶었다.

진주 샵에 들렀다.일단 더위로부터 벗어나니 시원해서 좋았다.

양식한 조개를 금방 꺼내 쪼개보니 진주가 금새 나온다.3년 양식한 조개라는데 서른 세개의 진주를 품었다. 조개의 눈물,결정체가 진주라는데 그 조개 속에서 진주가 나오니 신비스러웠다. 진주 쇼핑하고 실크 샵에 갔다. 한국에서도 볼수 없었던 목화의 실체를 보았다. 솜의 재발견을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예술의 탄생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가벼운 이불은 그렇게 탄생되는 것을 중년을 넘어 중국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이다.라텍스샵까지 들르고 나오니 6시9분

마지막 남은 이화원이 은근슬쩍 걱정이 되었다. 왜냐면 6시면 관광지 입장을 종료하는 우리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에서다. 솔직히 조바심이 났다. 혹여 못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길함까지 동반. 이화원까지의 이동거리는 금방이라니 그래도 입장할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이화원 앞에 서고 보니 상황은 완전 판이하게 돌아갔다. 입장마감되어서 입장못 시킨다는 것이다.중국말을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리 돌아가는 걸 눈치로 느낄수 있었다.

현지가이드가 입장을 위해 통사정하는 모습이 보였다.아 코앞에 이화원을 두고 돌아서야하는가 많이 걱정되었다.어찌어찌 해결되었는지 택시를 타고 급히 이동했다.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정문을 두고 쪽문으로 통과를 했다.중국 여행의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헐레벌떡 이화원 입장

서태후의 별장.

원래 이화원은 해지는 모습이 더 멋지다는 가이드의 말에 위로를 삼으며 짧게 둘러 보았다.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으로 구성되었다는데 그 규모가 호수를 넘어 바다가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이면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넘 늦은 여름시간의 입장은 그 멋진 풍경도 볼수 없었다.빈 배들만이 호수를 지키고 있었다.간간히 피어난 연꽃이 풍경을 더하고 있었다.728m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된 장랑의 일부분만 걸음으로서 이화원을 다 본양 마무리해서 무척 아쉬웠다.해질녁 이화원과 늘어난 능수버들 모습은 오래도록 각인될듯 싶었다.중국서의 마지막 식사는 삼겹살이다.우리 삼겹살맛과 다를바 없어서 익숙한 때문인지 입에 척 달라 붙었다.시원한 중국 맥주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식후에는 첫날부터 미뤄두었던 숙제를 해결하러 갔다.

왕부정거리 쇼핑이다.

밤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불야성이란 바로 거기를 두고 하는 말임에 분명했다.

대낮같이 밝고 사람들은 북새통이었다.

초호화건물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거의 비슷한 음식을 진열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주인이 프로다.

한국인임을 금새 알아차렸나 보다.

결코 서툴지 않은 한국말이 들린다.

“아줌마 싸요 어서 오세요”

그 왕부정 거리에서 먹어야할 특별 요리가 있단다.

전갈요리

징그럽긴 했지만 북경 여행에서나 맛 볼 수 있다니 놓칠수 없다. 두려움반 기대반으로 입에 넣었는데 의외로 맛있다.

꼬들꼬들 고소한 맛이라고 나할까? 누군가는 메뚜기 맛과 같다고 한다.

메뚜기를 맛본적이 없으니 비교는 어렵지만 아무튼 별난 맛이었다. 하나가지고 맛을 느꼈다고하기엔 좀 그래서 하나 더 먹었다. 두개를 꿀꺽! 야만인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밤이라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뭉쳤다.술잔을 기울이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정말이지 많이 늦은 시간에 잠들었다.

낼은 공항 가는 것만이 전부인 관계로 맘이 편안해졌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었다.

한 호텔서 먹는 음식이라 물릴만도 하건만 그런것도 없이 맛있게 먹었다.

태국서도 싱가포르에서도 음식가지고 성가시지 않았으니 천상 떠돌아다녀도 좋은 조건이 나면서부터 가졌다면 이도 또한 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 떠나면 물갈이 하고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는데 내겐 모두 딴 나라 얘기다.

즐겁고 행복한 3박4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오전엔 중국에 있었는데 오후엔 한국에 있었다.

문명의 이기는 사람을 지구촌이라는 단어속에 포함시키는게 쉬웠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형제에게 고마워해야할듯 싶었다.

중국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상속에 파묻혔으니 말이다.

전라도 아짐의 북경 견문록 여기서 접는다.

마지막날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외국을 나가도 세계적인 공용어 바디랭귀지가 있으니 걱정 없다고 호언장담 했는데

마지막날 식당에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빈 접시를 갖다 달라고 했는데

종업원은 알아들은듯 금방 가더니만 콩나물 무침을 가져온다.

우리 밥상엔 아직 콩나물 무침이 수북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