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산에 가고플때가 있다.
남들에게는 그게 가끔이기도 하겠지만 시간되는 날이면 그렇게 불현듯 산엘 가고 싶다.
가까운 산이라도 좋고 혹여 아직 발길닿지 않은 산이라도 좋다.
아니 솔직히 표현하자면 가지 않은 산에 더 구미가 땡긴다.
일요일까지도 쉬는 월요일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그런데 불현듯 손이 날 부르는듯 싶었다.
혼자 가기는 힘들듯 싶어 동행인을 구해야했다.얼른 문자를 돌렸다.시간되면 월요일에 산에 가자고
급하게 얼렁뚱땅 사는 사람들이 없나보다.다들 짜여진 계획에 의해서 사노니 일정이 있어서 쉽지 않단다.
그래도 포기할수 없는일
열심히 문자를 보냈더니 한놈이 낚였다.
달마산이 구미가 당긴단다.
동행인이 구해졌으니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월요일 아침 7시 집을 나선다.
이른시간임에 분명한데 여름산행은 빨리 나서야지 넘 늦으면 자꾸 쳐지는듯 싶어 싫다.
그래서 부지런 떨면 산행중엔 여유로움이 있다.
나주터미널서 친구와 합류했다.
너른 들녁에 펼쳐진 푸르름이 있어서 눈이 시원했다.
어디를 가도 짚푸른 녹음이라서 좋았다.
몇년전 오가는 길에 스쳤던 해남 달마산 미황사 뒷풍경은 언젠가 한번 발걸음하게 만들만 했다.
바위산 자락이 한자락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그 발걸음 하는 날이 언제나 되련고 했더니만 바로 어제 발걸음을 하게 된것이다.
함께한 일행에게 모두 처음 만나는 산
예전에 볼땐 만만했다.
금새 오를 산이려니 생각해서 동행한 딸에게 금새 내려올것처럼 얘기했다.
그리고 아주 쉽게 산에 올랐다.
물론 도착해서 본 미황사 달마산은 안개정국이어서 아무것도 드러내 보이질 않았다.
절도 산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안개만이 ......
쉬운산은 결코 없었다.
물론 등산로 이정표를 보았을땐 쉬웠다.
여러코스가 있었지만 내려갈 시간을 생각해서 7시간 등산로를 선택했다.
물론 간만의 산행인 딸아이가 힘들다면 중간에서 짧은 코스로 돌릴 생각이었다.
안내판에 다도해가 한눈에 보인다는데 정상엔 다도해도 없었다.오로지 바람과 함께 몰려오는 안개뿐이다.
간단히 간식을 먹고 출발이다.
중간에 만나는 이정표 때문에 갈림길에서는 몇번 갈등을 했지만 대체로 제대로 된 등산로 길을 다녔다.
전날 어떤 산악회가 다녀갔는데 깨끗한 백지에 새겨진 산악회 화살표가 등산하는데 지대로 도움이 되었다.
종이 한장이 희망이다는 말을 실감할만큼 암담한 산행
순전히 안개때문이다.
정상에 서기를 꽤 여러번 맑은날 같으면 발아래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을텐데 도저히 감이 오질 않는다.
안개낀 날 산행 덥지 않아서 좋았지만 결코 좋을수 만은 없었다.
평일인지라 산행하는 사람도 없어서 솔직히 무섬증까지 몰려왔다고나 할까?
암벽 원정대가 되었던 날이다.
바위산 영암 월출산 못지 않은 암벽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아스라한 바위를 로프 하나에 의지하고 오르내리기를 꽤 여러번
도대체 언제쯤 끝은 있는건가?
안개때문에 보이지 않는 끝에 대해 상당히 불안한 맘까지 들었지만 내심 표낼수은 없었다.
다들 초행이니 서로 의지할밖에
정말이지 중간에 돌아서 가고픈 맘도 있었다.하지만 돌아설수도 없었다.
돌아설수 없으니 앞으로 전진할밖에
분명코 끝은 있으리라 생각하고 걷고 또 걸었다.
도솔암 이정표가 반갑다.암자라면 인적이 있다는 뜻일테고
아니나 다를까 도솔암 근처 등산로는 사람의 손길이 미친게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주 잘 정비되었다.등산로 따라 걸으니 하늘이 보인다.임도를 만났다.반갑다.
많이 지쳤는데 힘이 난다.저만치 도로도 보이고 저수지도 보인다.민가 가까이 내려왔다는 증표다.
간만에 산행에 동행한 딸아이 입이 댓발은 나왔다.괜히 왔다는 얘기다.투덜투덜 힘은 빠질대로 빠졌다.등산화도 아닌 신발로 꽤 많은 거리를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다.처음에 그냥 낮은 산 간다고 했는데 실수였다.낮은산은 뭔 낮은산 만만하게 본 달마산은 무지무지 큰산이 되었다.
엄청 돌아서 걸었다.
도로 양쪽은 칡넝쿨만 무성하다.울창한 숲 그대로다.
내리막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런데 다행인것도 잠시뿐이다.
곧장 마을로 내려가서 택시라도 불러탈까 하는 유혹을 뿌리친걸 금새 후회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또 오르막 내리막이다.
미황사천년역사길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걷는데 도저히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를 왔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시피보고 오른 산이니 물도 넉넉할리 없다.
아끼고 또 아껴서 마셨다.
미황사천년 역사길은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다.그냥 산책하듯이 걸으면 좋은 그런 길이었다.
중간에 영지버섯 두개를 얻는 행운도 얻었다.
돌무더기 너덜경도 만나고 편백나무 숲도 만나고
많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만난 산길임에도 맘에 쏘옥 들었다.
나중에 미황사를 산보하듯이 온다면 걷고픈 길로 보류해두어도 좋을길임에 분명하다.
안개속에서도 절집이 보인다.부도암이다.그렇다면 미황사 근처라는 얘기다.
오래된 부도밭도 안개속에 흐릿하게 보인다.
파이프를 통해 흘러 내려온 산물이 무엇보다도 반갑다.
벌컥벌컥 그동안 못 마신물 실컷 마셨다.좀 여유롭게 걸으며 하산
드디어 미황사다.
9시30분 산행시작해서 5시30분 미황사 도착 8시간 산행인 것이다.
누가 달마산을 작다하리요?
달마산은 더 이상 작지 않았다.
8시간 그 산에 흔적을 남기고 보니 무지 큰 산임에 도장을 꽉 찍는다.
몇년전에 보았던 미황사 풍경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해질녁이라서 그런지 산사의 고즈넉함은 고스란히 묻어나는듯..
한적한 여유로움이 있는 절집 풍경이 좋았다.
템플스테이를 하는지 그 사람들이 전부다.
절집 텃밭에서 상추를 한소쿠리 뜯는 보살님의 손길마저도 여유로워보인다.
미황사 괘불로 유명한 곳이라서 대웅전에 들렀다.혹시 그 유명한 괘불을 볼 수 있으려나 싶어서
새로 단장한 괘불집은 부처님 뒷전에 있는데 볼수는 없다.
아쉬워도 어쩔수 없는 부분이다.대신에 대웅전안 탱화와 천정을 꼼꼼히 보았다.
대웅전 배흘림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인상적이다.게와 거북조각상이 보인다.
그 곳에 머무는 스님이 다른 분께 설명하는걸 귀동냥하구서야 들여다 보니 정말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일밖에.
좋은 구경거리 하마터면 놓칠 뻔 했는데 타이밍이 적절했던게 행운이다.
이왕지사 늦은것 산사의 여유는 마음껏 누리리라 다짐하니 발길도 느려진다.
안개 때문에 제대로 못 봤으니 또 언제 오려니 생각하지만 그 언제가 또 언제쯤일지 너무도 아득한지라
눈도장을 꼼꼼히 찍어본다.담백함 그자체인 대웅전이다.
템플 스테이를 나선 외국인 대웅전 앞 꽃밭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무얼 생각하는걸까?
혹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생각하는걸까?
아무튼 종일의 산행을 마무리하고 주차장을 미끄러져나오도록
미황사 아름다운 뒷풍경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오라는 미련이 남은 산행이랄 밖에
돌아오는길에 만나는 월출산이 그날따라 더 가까이 다가온다.
쉽사리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고 곧잘 베일에 가려지곤 하는 월출산인데 말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그말은 만고의 진리다.
산행뒤에 먹는 한정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밥이 반찬이 입에 쫙쫙 달라붙는다.
산행은 힘겨웠지만 맛난 저녁 먹고 나니 그 산행의 힘듦도 봄 눈 녹듯 스르르 녹아버렸다.
안개 숲길을 헤쳐나간 원정대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