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마애불 찾아 떠난 1박2일2009.11.28

클레오파트라2 2010. 3. 28. 22:50

손꼽아 기다렸던 1박2일 답사다.

어느 답사인들 설레이지 않을까마는 이번 답사는 더욱 손꼽아 기다렸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이번 답사코스는 해미읍성만 빼고는 난생 처음 발 딛는 곳이기에 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하루 코스의 답사가 아닌 1박을 하고 오는 답사이고보니 더욱 더 기대될 밖에.

길 떠나는 사람의 분주함은 남은 자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는 듯 싶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함은 기본이다.

식구들 먹을 김밥과 찬거리를 준비하고 나면 새볔은 손살같이 아침으로 내달린다.

찬 새벽공기 가르며 떠나는 길은 추워서 웅크리기보다는 길 떠남에 활기차다.

발걸음도 가볍게 내딛는다.아직 어스름이 깔린 새벽길은  답사 가는날이면 이제는 제법 익숙한 길이다.

도청에서 그리고 문예회관서 답사객을 태운 버스는 미끄러지듯 그렇게 도심을 빠져 나간다.

도심을 벗어나니 들녘엔 서서히 아침이 찾아든다.산마루 어디메쯤 올라온 해가 화창한 날을 예견한다.

답사길에 날씨가 한몫하려니 했다.

중간에 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속도로 어디쯤 달렸을까? 반갑지 않은 가을비가 유리창을 때린다.온통 먹구름으로 들녁은 금새 어둑하다.

비 내리는 날 답사라?결코 반갑지 않지만 일기를 거스르며 살수 없을터이니 빗속에 답사를 할밖에.

아무래도 심상찮은 날씨에 준비된 것들이 없다.급히 우의를 사고 태안마애삼존불에  오른다.

큰 버스로는 갈 수 없는 길 중간에 내려 우의를 걸치고 걸었다.태안읍 백화산 정상부근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을 만나러 가는 길은 솔찬하다.

비에 젖은 포로 위를 천천히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노라니 금방이다.비 때문인지 오르는 길 백조암에서 바라본 태안읍내는 거지반이 안개속에 갇혔다.마애불보다 먼저 반긴것은 마애불보다 훨씬 큰 보호각이다.보호각의 우람함에 탄성을 내지를 정도다.이 석불의 의의는 우리나라 석불상의 시초라는 것이다.백제의 석불기술이 더 발전한 것이 서산마애불인 것이다.2여래 1보살을 돋을새김 했다는데 투박하다.불상과 보살의 상하경계를 나타내는 표현이 돋보인다.보살을 가운데 둔게 아니라 뒤에 둠으로써 상하관계를 나타내고 원근법을 사용한 것이란다.

다음은 서산의 해미읍성이다.5년전쯤 찾았던 해미읍성인지라 기억이 아득했는데 다시 보노라니 기억이 생생했다.려말 왜구의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란다.울력식으로 지방 사람들이 와서 쌓고 보니 성 곳곳에 지명들이 새겨진게 눈에 띤다.동헌 객사 내아가 고스란히 복원된 읍성은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슬픈 역사도 갖고 있다.천주교인들 박해의 흔적인 오래된 회화나무가 늦가을 햇살을 받았음에도 쓸쓸함을 자아낸다.오랜 세월 비바람에 흔들렸어도 슬픈 역사는 그 오랜세월만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듯 싶었다.

읍성앞서 우렁이 쌈밥으로 맛난 점심을 먹고 개심사로 달렸다.며칠전 답사를 간다고 자랑쳤더니 친구가 개심사 가면 해우소 꼭 들러보고 오라고 했다.자연미가 흐르는 건축이 있는 곳이 개심사라고 정말 괜찮은 곳이라 칭찬을 했던 곳

절집으로 오르는 그 길이 가파름은 있었지만 그 가파름 덕분에 절에 대한 인상이 더 좋게 각인되었던 곳이다.

돌계단이 가파르게 있었지만 솔잎향이 묻어나서 운치있었던 길이다.개심사 가는 길은 굽은 소나무들이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물기머금은 산자락이 뿜어내는 그 향을 어디 비싼 향수에 비할까?

연못에 떨어진 낙엽이 그리고 연못에 비친 나목의 배롱나무도 작품으로 다가왔던 곳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심검당은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 싶었다.오래된 기둥엔 벌들이 먼저 둥지를 틀었는지 기둥에 벌조심하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대웅전 무량수전 한참 경사진 곳에 위치한 산신각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해우소에 들렸다.은행잎이 카펫처럼 깔려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는 해우소다.자연으로의 회귀여야하는듯 뒷일보고 마무리는 낙엽한줌 뿌리는 센스가 돋보인 곳이다.

다음은 백제의 미소라 칭하는 서산 마애불이다.말로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한번도 가볼수 없었던 곳인지라 더 기대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멋진 미소라서 그렇게들 극찬하는 것일까?드디어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보니 가슴이 벅찼다.

백제의 미소앞에 섰다.가파른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 이렇게 저렇게 앉아서 서서 여러모로 보았다.볼수록 매력있는 웃음이었다.

세상의 모든것을 다 녹아내리게 할듯한 자비스런 웃음 어느 누군들 저 웃음을 웃어낼까 싶었다.세상의 모든것들을 다 끌어안을듯한 웃음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은 웃음임에 분명했다.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 서산마애불이었다.어느 석공의 손길이 닿아 저토록 완벽한 미소를 자아냈을까? 심혈을 기울여 돌을 다듬었을 석공을 그려본다.도시 그려지지 않는다.언뜻 비추는 햇살에 마애불은 더 신비한 웃음을 자아낸다.오래된 숙제를 한듯 시원스럽게 마애불을 만났다.

마지막 답사지는 보원사지

도로변에서도 쉽게 눈에 띠는 곳이다.이리저리 파헤쳐진 흙들 유구들  흔적이 간판보다도 먼저 말해준다.

꽤 넓은 절집이었을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니 그 곳에서 나온 유물들로 시대를 거슬러 가야만 하는 곳.

여기저기 산재한 추춧돌들이 그 절집을 크기를 대변하고 있다.

질척거리는 흙길을 걷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둑길을 걸어서 폐사지의 흔적들을 더듬는다.

폐사지의 문화재 발굴이야말로 유에서 무를  찾는게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발굴현장에서 직접 참여하는 선생님 말씀이라 현장의 느낌이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왔다.어떤 연유로 폐사지가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한때는 영화를 누렸음에는 분명하다.많을땐 1000여명 스님이 있었더니 감히 그 규모를 짐작이나 할까?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석조가 대변하려나?강진 무위사에서 보았던 석조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큼이 확실하다.

허허벌판 폐사지의 이야기 속에 빠지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어스름이 찾아왔다.들녘의 찬기운도 서서히 느껴질 즈음 버스는 덕산온천으로 향했다.허기진 배는 삼겹살로 채우고 뜨신 온천에 몸을 담그니 하루 여정의 피곤이 스르르 녹아들었다.

1박의 끝 마무리는 머문곳이 온천인지라 온천으로 마무리했다.

 

이튿날

또 새볔부터 온천으로 몸을 풀었다.부지런을 떤 덕분이다.

1시간 온천욕 즐기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뿐 또 하루를 거뜬히 시작할 수 있었다.

첫코스는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길 떠나는데 복병을 만났다.

가시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다.시간을 밀쳐서 좀 걷히면 가야하는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오리무중

그래도 떠난다.예정된 시간인지라.

안개비 내리는데 사면석불을 보러 올랐다.안타까움이 동했던 코스다.사면에 석불을 새겼는데 어쩐 일이지 제대로 된 석불은 하나도 없다.

머리 뿐 아니라 팔도 온전치 못하다.좌상 하나와 입상셋을 사면에 새긴 이유는 사면에서 부처님을 만나게 하려는 배려였을까?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마애불 그 자리에서 보는 사방은 시원히 내려다보이지 않았을까?

다음은 추사고택이다.남종화와 소치 허련 얘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추사인지라 그곳에서는 더욱 귀를 쫑긋세우고 들어야했다.잘 가꿔진 고택이 추사의 뿌리를 유추하게 한다.신규 해설사라는데 해설사의 안내가 명쾌하다.워낙에 큰 인물이라 그런지 얘기거리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온다.들어도 물리지 않는 재미난 얘기다.유작과 가족이야기 종일 들어도 끝이 없을듯 싶다.건물 뒷편에 둔 쪽마루까지 둘러보고 추사기념관에 들렀다.전시관도 볼거리들이 무궁무진했다.영상물까지 보고 나니 아득했던 추사에 대해 좀더 자세히 가닥이 잡히는듯 싶었다.대흥사 무량수전 현판 얘기는  더 반가움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수덕사 가기전에 충의사 상무예덕관을 휘뚜루 들렀다.

점심은 수덕사 절집 아래서 야채비빔밥

식사후 산책하듯 절집을 올랐다.절집 오르는 길이 밋밋한 절집이라고나 해야할까?

특별한게 있다면 수덕여관이다.갓 이엉을 엮어낸 초가

그곳은 한때 고암이응로가 머물렀던 공간이란다.

대흥사의 유선여관마냥 유명한 집이라니 그냥 지나칠수 없다.애써 신발벗고 올랐다.방바닥의 뜨신기운이 그대로 전해온다.정말이지 딱 한숨 뜨신 방에서  눈을 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순간 했다.방에 전시된 그림 훑어보고 그 방에 엎드려 사진 한컷하는 여유를 부렸다.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때문인지 정말 가고픈 곳 절집을 대라하면 서슴치 않고 될 곳이 수덕사였다.가 봐서가 아니라 그냥 막연히 가고픈 절집 말이다.

그 가고픈 절집에 다다른 감회가 오죽하랴 싶었는데 절집이 품어낸 향이  생각보다 덜 하다.

성보 박물관서 만난 유물들이 맘을 더 사로 잡았다.여승들이 모였다는 견성암에 애써 올랐더니 실망만 앞선다.아마도 절집의 고즈넉한 맛을 예견하고 올랐기 때문이리라.

현대식에 거기에 거대하기까지 하니 수덕사에 대한 환상은 일순간 와르르 무너질 밖에.

기대보다 못한 절집 수덕사이고 말았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 상가에 걸린 곶감은 일품이었다.수덕사 하면 이제는 여승보다는 곶감이 먼저 떠오를듯 싶다.

마지막 답사지는 고건축박물관

옛스런 멋에 취하기 딱 좋은데 그리고 공부할게 좀 많은듯 싶은데 가장 귀한 시간을 조금 갖고 갔다.

시간은 적은것에 비해 넘 많은 건물을 만났던 곳이다.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고건축은 그곳에 다 있었으니 시간없고 고건축은 보고 싶은 사람 구미에 딱 맞는 박물관이다.늘 보아도 낯설은 건축용어를 이해하려면 그곳에 가면 자연스레 해결할듯 싶다.

답사의 묘미는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기는 것임을 익히 알면서도 고건축박물관은 발만 담그고 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한꺼번에 넘 많은 것을 소화하려는 빠듯한 일정을 탓할수도 없다지만 다음 답사는 좀더 여유를 동반한 답사이기를 기대하며

고향 앞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빠듯한 일정에 넘 많은 것을 보아서 헷갈리지는 않을까 싶어 더 날이 가기 전에 기억을 더듬으며 답사기를 마무리 한다.

 

 

함께라서 행복한 답사였습니다.

좋은 답사 마련하느라 애써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