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소안도에 가다2009.10.11

클레오파트라2 2010. 3. 28. 22:43

출장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쥐고 길을 떠났다.

완도에서 뱃길로 1시간 소요되는 소안도라!

눈 뜨면 고개 하나만 넘으면 늘상 보는 바다였던지라 물리기도 하련만

아직도 마흔 중반에 들어선 내게 바다는 온통 그리움이고 달려가고픈 곳이다.

뻘로 가득찬 바다여도 좋고

쪽빛 물 파도치는 제주 바다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고

여적 바다는 그렇게 내겐 쉼표같은 공간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좀체 나서지 못했던 바다인지라 더 그리웠는지 모른다.

아무튼 배를 타고 바다로의 출장은 기대 만땅일 수 밖에 없다.

추석 뒤끝 뻑쩍지근한 몸을 이끌고 꼭두새벽에 길을 나섰다.

사무실까지 7시 출근

달이 아침 출근길에 길동무가 되었다.

두어시간 달려 완도다.

일행과의 아침 수다에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해신 촬영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바다를 조망한다.

끝없이 펼쳐진 양식장 풍경이 바다가 보고임을 실감케한다.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이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다가온다.

바닷바람 앞에 선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아침이랄까?

화흥포항에 닿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여객선 터미널은 조용한 고요만이 침묵처럼 흐른다.

좁다란 공간에 차지한 몇개의 의자도 사치스럽지 않음은 아마도 항구이기 때문이리라.

가까이서 먹이를 찾아 낮게 날으는 갈매기 떼 소리가 눈길을 끈다.

역시 바다는 바다다

드디어 배를 탔다.

손님이라고는 고작 우리 일행과 서너 사람이 전부다.

뱃고동 소리 요란히 울리며 바다로 서서히 밀려나간다.

뱃길이 지난 흔적은 바다에 포말로 고스란히 묻어난다.금새 사라지고 또 자욱 남길지언정

낮게 지붕을 이마처럼 드리운 어촌의 풍경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아마도 멀리서 보는 한가할게다.

분명 가까이서 보면 눈 코 뜰새없이 바쁠게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픈 가을걷이할때가 아닌가!

바닷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난간에 서 있기도 물릴 즈음

의자에 앉았다.선 풍경만큼은 아니어도 앉음이 주는 편안함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앉은김에 일행과 둘러 앉아 게임을 했다.

왕년에 한가닥 하던 실력들을 발휘하는 어른들의 몸짓을

지나가는 요새 아이들이 보았다면 구경거리가 생긴양 한참을 머뭇거렸을게다.

솔직히 승선객이 별로 없었던 터라

2층 선실을 전세낸양 그렇게 게임을 했다.

분명 시끄러운 소음임에 분명했을터인데 끊이지 않고 크게 돌아가는 엔진이 삼켜버려서 천만다행이다.

어쩌면 그 비빌 언덕을 믿고 더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다.

369게임

아주 오랫만에 해보는 게임인지라 머리보다 몸이 앞선다.

손도 입도 도대체가 맞아주질 않는다.

그러니 엎드러 몸인 혹사를 당할밖에

바다에서는 1시간 소녀가 되었다.

나이를 잊는 마흔 중반의 소녀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을 되새김질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손뼉치며 노래부르고 게임하고

1시간 남짓 그러고 나니 목적지 소안도다.

난생 처음 발 딛어보는 소안도는 섬이라기 보다는 육지였다.

섬 일주도로를 한바퀴 돌면서는 더욱 그랬다.

좁은 도로에서 혹여 다른 차를 만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었고

길섶 어디선가는 불쑥 동물들이 뛰쳐나올만큼 산은 그렇게 우거졌었다.

그곳에도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폐가의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은

그렇게 주인없이도 익어가고 있었다.

영낙없이 내 고향 바다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아마도 비슷한 풍경이 마음을 끌었는지 모르겠다.거짓말같이 발 딯은 순간 고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으니 말이다.

민족의 섬 소안도

부산과 함경도 북청과 더불어 항일운동이 가장 격렬했다는 곳이다.

소안도 항일운동기념탑에 참배를 하고 기념관을 구경했다.

섬 규모와 어울리는 기념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 사이즈다.

격렬했던 항일운동지라는데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안타깝다던 안내자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던 곳이다.

바다이니 점심은 당연히 맛난회다.

광어회가 일품이다.

맥주 두어잔 걸쳤을뿐인데 얼굴이 달아오르고 대낮에 취기가 돌다니!

배를 기다리면서 뱃머리에서 평상에 걸쳐 앉아 먹는 전복은 또 얼마나 입에 감칠맛 나던지!

내친김에 신지도 항일운동기념탑까지 참배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한 탑은 꽤나 언덕배기에 있어서 조금 숨을 헐떡여야했다.

그 유명한 신지도 명사십리 바다에 갔다.

어찌나 고운모랜지 맨발을 벗지 않을수 없었다.

마냥 맨발 벗고 뛰고 걷고

아이마냥 좋아했다.

쉼없이 와서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고

파도 피해 펄쩍 뛰고

철지난 바닷가는 중년 아짐들 세상일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리지르고 걷고 또 뛰고

발자국을 남기고

모래성을 쌓고

아마도 10여년만에 찾은 명사십리는 그렇게 또 다른 추억을 제공했다.

벤취에 앉아 마시는 맥주한잔은 세상의 시름 모두를 잊게하는 청량제

그것임에 분명했다.

오래도록 머물다 가라는 바다의 유혹을 떨치느라

몸이 달았던 명사십리

사람없어서 철 지나서 좋았다면 솔직한 고백이 될까?

한없이 걸어도 발이 상할 염려로부터 놓여놨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명사십리

어쩌면 또 빼지도 않을 사진을 좋으니 남겨야한다는 생각에 디카에 쉼없이 담았다.

설혹 빼지 않더라도 담겨있는 동안은 보고 행복할 사진임에 분명하다.

돌아오는 길 물 좋다는해남군  북일면 약수터에 쉬었다.

약수한사발로 정신 뻐뜩 차리고 보니

벌써 산속은 어스름이 찾아들었다.

아이고 갈길은 아득한데

밤이라니!

운전자야 운전하고 광주까지 가야하는 부담이 있겠지만

우리야 가는길에 고단하면 자면 될것을.......

그래도 운전자에겐 미안타

2시간 30분 달려야 광주라는데.......

나에겐 잠 한숨 자고나면

바로 광주일게다.

정말 그랬다.

깨어보니 낯익은 풍경앞에 와 있었다.

13시간만의 귀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