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2009.5.27

클레오파트라2 2010. 3. 28. 22:40

오후 들어 하늘은 잔뜩 먹구름이더이다

흡사 비를 머금은 먹구름

삽시간에 바람이 불더이다

비를 데려올 바람인줄 알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금새 비를 데려 왔습니다

두어번 버스를 갈아타고

도청앞 분향소에 다다랐습니다.

글쎄 오늘이 아니면 안 될듯 싶었습니다.

고인이 가는길

조문을 하지 않으면

아마도 그게 평생의 멍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현듯 했습니다.

봉하마을까지는 가지 못해도

가까운 곳에 가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른 사람들은 저 말고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장사진처럼 쭈욱 늘어진

긴 길에

투정하며 금세 돌아섰을법 한데

오늘은 그런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흐린날

비는 후두둑 떨어지고

날은 저물고

추모열기는 한없이 뜨거운게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긴 줄도 지루한줄 모른 날이었습니다.

아니 ,

지루할 수 없었습니다.

먼 길 떠나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 40여분의 줄섬을 지루하다 하겠습니까?

많은 인파속에 묻히고 보니

별별 생각들이 많이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줄은 그 숱한 생각들을 비집고

줄어 들었습니다.

긴 줄 속에서

도청의 분향소 풍경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어쩌면 오늘 장면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고픈

욕심을 부렸던 날입니다.

바람 불고

비오고

날 저물고

악조건 속에서 고인이 남긴 글귀들이 가슴을 후벼 왔습니다.

고인이 남긴 말이라서 그런지 한귀절

한귀절 한귀절이 허투로 들리지 않더군요

아마도 삶과 죽음은 이런건가 봅니다.

살아있을때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결코 무심할 수 없음이 그렇습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조각이라는 표현이

가슴이 절절이 와 닿습니다.

어쩌면 그리 철학적인 말을 담았을까요?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은 없을듯 싶은데

인생 무상이 느껴져 서글펐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비맞은 플랭카드가

그냥 프랭카드일수는 결코 없었던 날입니다.

40여분 줄 서서

국화 한송이 바쳤습니다.

살아있을때 힘이 돼주지 못한 죄스러움을 국화한송이로 달래고 오는 우를 범하다니요!

숭례문을 화마에 잃고 떠돌았던 지못미를 생각했습니다.

노란 추모리본에 가슴에 담은 말을 적었습니다.

글쎄 분향소를 다녀오면 좀 마음이 가벼울려나 했지만

되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분향소에 아직 안 가셨나요?

아무리 바빠도 낼쯤 시간내서 다녀오시길

사람사는 세상을 꿈 꿨던 사람의

사람사는 세상을 늦게나마

만날 수 있을듯.......

해지고 어둑해질때

귀가길에 만난 초승달은

결코 더이상

아름답지 않음은 아마도 침전된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예전엔 참으로 아름답던 그 달이언만

아름답지 않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