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허락한 무등산 설경-12월 19일 일요일
하늘이 허락한 설경?
아니, 하늘이 내려준 설경이 맞겠다.
10월 26일 무등산에 다녀오고 간만에 오른 산이다.
그제 종일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니
쉬는 날엔 은근히 무등산에 오르고 싶었다.
마침 일요일은 나에게 무등산에 오르라고 쉬는 날 아닌가?
눈도 왔고 쉬기도 하고 박자가 딱 맞아 떨어진 날,
놓칠 수 없다.
산 좋아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욱 좋을 터,
놉을 얻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산에 오르자고 조르던 후배에게 전화했더니만
너무 좋단다.
사실 하도 산에 가자 졸라서 25일 크리스마스에 산에 가자 했더니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냐고 해서 날 웃게 만든 후배다.
본래 오늘은 김장하기로 했던 날인데
갑자기 추워지니 배추가 언다고 얼른 가져가라는 언니의 성화 덕분에
번갯불에 콩 볶듯 김장을 해버려서 일요일 귀한 시간을 번 것이다.
뭘 할까? 고민할 이유가 없다.
눈도 왔겠다 싶으니 당연히 무등산행일밖에.
원효사에서 후배와는 9시 30분 만나기로 약속했다.
6시 일어나 준비하고 7시에 집을 나서면 딱 맞을 시간인데
7시에 현관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 비가 오네.어쩌지! 비오면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20분에 출발했다.
그사이 광주일기예보를 보니 비올 확률이 60%
비옷을 걸치고 집을 나왔다.
밖에는 비가 오질 않는다.
오마이갓!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서 맞은 비는 현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었던 거다.
천만다행이다.
각화저수지 거쳐서 청풍쉼터-충장사 뒷편-원효사
노상 가는 길인데도 좀 헤맸다.
왜냐면 눈길이어서.
사실은 충장사 뒤편까지는 일없이 왔다.
그런데 충장사 뒤편서 원효사 가는 길이 눈이 수북히 쌓였다.
그 누구도 간 적이 없는 길
그 길에 내 발자국을 남겨야한다.
자주 가는 길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눈길은 녹록지 않았다.
왜냐면 눈길이라서.
더군다나 그길은 바위들이 많아서 헛디디면 돌틈으로 발이 빠져 낭패를 보기도 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가는데 어느 순간 라디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듣는 라디오인데.
순간 폰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것임을 알게되니 식은땀이 흘렀다.
왔던 길이 험난함을 알았던지라서 더욱더.
5분쯤 왔던 길 되돌아갔더니만 눈속에서 라디오소리가 들린다.
라디오를 틀어서 다행이었다
평상시 무음으로 해놓았다면 눈속에서 찾기도 어려웠을 터
커버가 눈에 띄게 빨간색이었던 것도 천만다행이다.
산 넘어 산이다.
눈길이라서 길 가다가 길을 잃었다.
이쯤이려니 하고 어림짐작하고 갔는데 길이 아닌 길을 간 것이다.
조릿대를 헤치고 더러는 무릎까지 빠지고 넘어지고
이 즈음이면 도착해야 하는데 길이 보이질 않아서 맘이 조급해졌다.
그 사이 후배는 이미 도착했다는 전화까지 받은 상태라서 조급함은 배가 됐다.
길도 없는 길을 걷다보니 저만치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많이 눈길 헤매며 올라온 듯, 간간히 본 암자다.
그 암자가 그리도 반가울 줄이야.
예전 다니던 길 찾아서 원효사지구 도착.
드뎌 후배와 합류했다.
7시20분 출발했는데 10시27분 도착이라면 여느때보다 30분 늦은 것이다.
눈길에 헤매고 다시 되돌아가고.
산에서 조난당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누군가 이미 갔던 눈길을 따라 산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설경은 좋은데 걷는게 퍽퍽했다.아마도 오래 걸어서 지친 느낌이랄까?
정상까지는 턱없이 멀었는데~~
아무튼 서석대 정상은 12시 40분 도착이다.
따뜻한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상은 정상이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추워서 오래 서 있을 재간이 없다.
서석대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려고 줄은 또 얼마나 섰는지?
그렇게 많은 이들이 줄 선 것도 처음보는 진풍경이다.서석대에 오른 사람도 많고.
광주 사람이 모두다 산에 오른 느낌이랄까!
오른 공력에 비해 정상서 머무르는 시간은 짧았다.
아무리 추워도 올라온 보람 있게 주변 풍경 담아가기.
사진 찍고 영상 찍고 가슴에 담고 .
하늘의 흰구름도 작품으로 등장해서 좋다.
서석대의 상고대도 담고.
점심은 나만의 아지트 용추폭포 바위서
김밥 먹고 라면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역시나 산에 오르는 풍경을 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눈 아래 풍경을 보는 눈맛도 좋다.
4시10분 하산 완료.
스벅서 차 한 잔 마시며 또 수다~
5시54분차
타려는데 종점은 한밤중이다.
무등산마저 한밤중이다.
그 시간에 만나는 무등산 풍경도 이쁘다.
벌써 저만치 샛별하나 떠올랐다.
깜깜할 때 나와 깜깜할 때 들어가다니~~~
온전히 제대로 무등산과 하나된 날이라고 해야겠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