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샘 모녀 프랑스10일여행-사흘
월8일(일)-흐리고 맑음
성샤펠성당-콩시주르에-노트르담성당-시테섬-퐁피두센터-피카소미술관-빅토르위고-바스티유광장
6시40분 기상, 중간에 깨어나서 일기 쓰는 시간 가졌더니 피곤하였다.
7시20분 식사, 어제와 같은 메뉴임에도 맛나게 먹었다. 금고 비번 때문에 한동안 소란이 일어났다. 금고에 현금과 카드 여권 등을 두고 다니는데 현금 꺼내고 비번 설정을 잘못해서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푸론트에 전화해서 서비스를 받았다. 발 동동 구른 우리와 달리 서비스 맨은 금방 금고를 열어주었다. 쓸데없는 팁 2유로를 지출했다. 에고 딸에게 미안해라.
8시30분 출발 지하철 타고 퇼르리서 퐁네프역 하차.
그 유명한 퐁네프 다리를 걸었다. 세계 연인들의 사랑의 약속 자물쇠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렇지 사랑이 변하면 안되겠지. “사랑의 시작은 둘의 맹세로부터 시작될 거야”
비가 조금 내리는데도 여전히 뛰는 사람들이 있다.
구글맵 도움을 받아 생샤펠 교회를 찾았다.2층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한 곳.
다양하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압권이다. 성경의 내용을 그렸을 터인데 이해 할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 햇빛에 반사되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기대할 수 없었다. 흐린 날씨 때문에. 한동안 의자에 앉아 스테인드글라스 보기. 그냥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다. 바로 옆에 있는 콩시에르주리로 이동했다. 마리앙뚜아네트가 갇혔던 감옥이라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사치의 대명사인 그녀였던지라 감옥까지도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서 쓰는 용구들 감옥형태를 둘러보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뮤지엄 패스 덕분에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정보에 의하면 수녀님이 10시부터 노트르담 성당 안내를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참여하려고 부랴부랴 뛰었는데 도착하니 10시10분. 늦었다. 혹시나 싶어 수녀님을 애써 찾아보았는데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투어는 토요일이란다. 그럼 그렇지 일요일 미사 드려야 할텐데 투어를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마침 미사가 있어 성당에는 경건함이 흘렀다. 성가대의 은은한 음악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 의자 한 켠에 앉아 미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다. 장소 또는 음악이 주는 평화다, 여행자들도 함께 합류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종교는 민족 아니 나라를 초월하는 게 맞다.유럽인도 동양인도 흑인도 모두 그곳에서 평범한 똑같은 인간인 것이다. 자못 엄숙한 그 분위기에 이끌어 아주 천천히 구경하다가.딸은 2유로 내고 촛불을 밝혔다. 초 밝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하긴 곳곳에 초를 밝히도록 배치해 두었으니 누구라도 맘만 있으면 밝히면 되는 것이다. 큰 사각 통엔 세계의 지폐가 모였다. 우리 돈도 보인다.
기꺼이 1000원을 자랑스럽게 넣었다. 성당 구경하다 비행기 옆좌리에 앉았던 순천 사는 정민씨를 만났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본래 일요일 노트르담 예배를 보려고 작정하고 왔단다. 여행지에서의 미사도 멋지다! 글로벌 시대가 실감난다. 비행기 타고 와서 내가 원하는 성당서 미사보기!
성당 앞 포앵제로서 발 내밀고 사진 찍기. 거기서 사진 찍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본래 그곳은 파리의 도로기점 일 뿐인데......
그 사이 성당 입장 줄이 장사진이다. 아침 일찍 부산히 움직이길 참 잘했다.
줄 서는 시간을 절약했으니. 종탑에 오르려는 줄도 만만치 않다.10분에 10명씩만 들여보낸다니
종탑구경은 엄두도 못 냈다. 빠른 포기가 때론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대신 성당을 겉에서 한 바퀴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사면에서 본 노트르담 성당이 장관이다. 포기가 준 덤이다.
어쩌면 앞면만 보고 갈 뻔 한 성당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성당의 빗물받이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진 게다. 사과까지 하나씩 베어 먹으며 세느강변 걸으면서 생루이 섬으로 향했다, 섬 하면 물위에 덩그러니 떠 있을 줄 알았더니만 웬걸!
세느강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건물들이 들어섰는데 그게 생루이 섬이란다.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가게를 찾았다. 바닐라맛과 복숭아 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천연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르르 입안에서 녹는 그 맛이라니.
걸어서 아름답다는 시청사를 갔다.
섬세함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건물이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다음은 퐁피두센터를 찾아가는 길
무척 애먹었다. 배가 고파 근처의 유명한 쌀 국수집을 정말 애써서 찾아갔는데
문은 열렸고 사람이 있는데 영업은 하지 않는단다.
하는 수 없이 곧바로 퐁피두센터로 갔다. 오후시간대가 되니 줄이 굉장하다. 저 줄에 서서 기다려야하나? 일단 줄서서 기다리다 아닌 듯 싶어 딸이 근처 직원에게 물으러 갔다. 뮤지엄 패스는 긴 줄 아닌 짧은 줄 역시나다! 빠르게 입장. 사진에서만 보던 노출 에스컬레이터 타고 드디어 입성 5층 현대미술관 가서 귀에 눈에 익은 작품들 만났다. 달리 앤디워홀 미로 피카소 잭슨폴록 등의 명작들이 많았다. 작품들 보다 지칠 지경. 한참 앉았다가 내려오는데 길을 잘못 알려주어서 헷갈려서 오락가락 헤매기를 여러 번 앤디워홀 작품은 놓쳐서 물어서 다시 되돌아가서 보기까지 했다. 다음은 피카소 미술관 찾기도 무척 힘들었다. 찾고 나서는 갑자기 밀려드는 허기를 달래야 했다. 프랑스 여행도 식후경! 근처 식당서 3시에 늦은 점심 치킨 샐러드와 치즈버거 시드르 한 잔. 익숙한 음식들이라 입에 딱 맞았다. 식사 값이 무척 비싼 곳이 유럽임에 분명 물론 양이 많기도 했다. 돈 아까워 억지로 다 먹다보니 에고 배불러라. 피카소 박물관은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 작품이 많았다. 물론 회화 작품보다는 도자기 조소 판화 등 살아생전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은 그런 작품들 덕분이다. 빅토르 위고 집 찾는데 또 다시 헤맸다. 한참 찾다가 안 되겠다싶어 현지 주민인 듯 싶은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영어가 안 되는 아저씨 의사소통의 애로사항이 있긴 한데 빅토르 위고라는 말은 알아들은 듯,
함께 동행해 주었다. 골목을 꺾고 또 꺾기. 직진해서 가란다. 고맙게도 아저씨가 근처까지 알려주고 제 갈 길을 갔다. 보주광장이라고 사각으로 된 광장이 나왔는데 어디쯤 위고의 집이 있는 표시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무조건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으로 가는 수 밖에. 근데 사람 많은 곳도 보이지 않는다. 방문객이 없을 리 없는데....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귀퉁이에 있는 위고 집을 찾았다. 애써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알량하게 귀퉁이에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라 큰 갑판이라도 내세울 법도 한데. 우리 생각뿐이다. 레미제라블,노트르담의 곱추 등의 걸작을 집필했던 공간엔 그가 썼던 의자 침대 거울 펜 등 유품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꽤나 큰 저택에서 명작들을 쓴 느낌이다.
근처 바스티유 광장을 찾았을 땐 어둑발이 내렸다. 가까이 거대한 상징물이 높이 솟았다.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을 기린 곳이다.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다고 해야겠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으니.
근처의 놀이시설은 그 역사와는 무관하게 현대를 사는 양 반짝거린다.
바스티유서 타고 어디선가 환승 1호선 타고 6정거장 거쳐져 숙소 귀환
세 번째 타는 지하철 이제 제법 익숙하다.
유난히 작고 불편한 지하철인데.
어라 분명 앞쪽에 탔는데 운전수가 없다. 이건 뭐지?
설마 무인으로 운영되는가?
옆에 선 연인들의 지나친 스킨십도 무심코 넘길 수 있음은 여기는 진정 거부할 수 없는 파리!
루브르 역 근처서 지혜 대학 친구를 만났다.
유리 피라미드 옆에서
세상에나 파리서 친구를 만나다니?
반가움이 더했다. 한국서도 좀체 못 본다는 친군데
프랑스에서 만난 거다. 근처에서 맥주 한잔 하고 헤어졌다.
낮에도 소매치기 극성이여서 신경 써야 한다는 몽마르트 야경을 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참 많이 걸었던 하루다. 여행은 젊어서 다리 떨릴 때 아닌 심장 떨릴 때 가라는 말 가슴에 와 닿은 날이다. 좀 더 나이 먹어 걷기 힘들었으면 중간에 분명히 포기했을 것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제법 늦은 시간
비 맞고 많이 걸었던 참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