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소쇄원!
한여름밤의 꿈을 꿨습니다.
귀동냥 덕분에
지인이 카톡을 보다 그러더라구요.
"어 소쇄원서 황병기 가야금 연주하네"
그냥 스쳐 지날 수도 있는데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았습니다.
호기심 급 발동해서
언제 어디서 했더니만 바로 그날 오후였습니다.
딱히 저녁 약속도 없던 제게 더할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갈려고 맘은 먹었는데 어떻게 갈까가 문제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던가요?
다행히 공연 좋아하는 지인이 함께 가자고 해서
덤으로 딸려서 함께 갔습니다.
퇴근 후 토요일
좀체 막힐리 없는 소쇄원 가는 길에 차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다 그 공연 보러가는 듯 싶었습니다.
도로변은 이미 차들로 장사진
갓길은 그냥 주차장이었습니다.
오는 차는 많고 주차장은 한정적이고 그럴밖에요.
도착하고 숨 살짝 돌리고 나니 바로
공연 시작이었습니다.
"더위에 잘 지내시는가요? 저는 여기 주인 양산보입니다. 조선시대 사람 보셨나요?
.....
......"
멋지게 차려입은 도포자락 휘날리는 그 선비는 바로 양산보였습니다.
주인장으로서 손님을 초대하고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소개까지 했습니다.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
사돈인 하서 김인후가 지었다는 사십팔영도 들려주었습니다.
소쇄원서 여름나던 선비 덕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16세기 조선의 소쇄원으로 말입니다.
물이 많으면 폭포가 되는 그 바위 위에서
선비는 48영을 읊었습니다.
-조담에서 미역 감고-
맑은 조담은 깊어도 바닥이 보이고
미역을 감고나도 맑기는 여전해
미덥지 않은건 인간 세상이라
염정을 걷던 발 때도 씻어버리네
손수 계곡물에 발 담그고
48영을 읊는 선비를 보노라니
그 풍경만으로도 더위를 한순간 잊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제월당으로 이동해보시게요 하는 선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조명은 제월당으로 향했습니다.
제월당에 동그마니 앉아서 들려주는 대금 연주는
댓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느낌이었습니다.
뒤 이어 소쇄원의 사계를 가야금 연주로 들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가 있다면 이젠 소쇄원의 사계를 가야금으로 듣는것이지요.
그 공간이 소쇄원이라서 그랬을까요?
소쇄원 사계 연주는 그대로 소쇄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아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겨울 소쇄원에 눈이 내리는 풍경이 그려진 듯~~
본래 황병기 선생님의 연주가 있기로 했다는데 갑잡스레 편찮아서
대신 제자가 연주를 했지만 사계의 느낌만은 또렷했습니다.
사위가 어두어지는 소쇄원에
울려퍼지는 가야금소리는 어둠마저도 잠들게 했습니다.
연주자의 그림자가 가야금의 농현까지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음원 전달식 참 재미있었네요.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에게 직접 '소쇄원의 사계' 음원이 전달되었습니다.
다음은 시립국극단의 심청가 중의 추월만정
심청이 황후가 된 후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대목인데
진양조로 불러서 아주 슬픈 대목이지요.
가을 밤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불러들여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기러기에게
부탁하려는데 막상 눈물로 한자 한자 겨우 쓰고 나니 기러기는 날아가서 간곳 없고 달만 휘엉청 밝더라는 가사지요.
아버지를 그리는 딸의 마음이 절절이 묻어나는 소리였습니다.
달만 떴더라면 더 없이 좋았을 공연
남도풍류나들이 처음으로 문 여는 날
제월당에 달은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이미 제월당이라는 당호에 달이 들어갔기에 두 개의 달은 필요없었던 걸 알았을까요?
달까지 동행했으면 더 좋았을 공연~
그래도 여름밤 뜨거운 열기 식히기엔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 곳이 소쇄원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장소가 한 목을 했다고나 할까요?
그 늦은 시간 소쇄원을 거닐 수 있었음이 또한 행복이었습니다.
벌써 다음 달뜨는 날의공연이 기다려집니다.
그땐 정말 더 많은 지인들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는게 인지상정이죠!
한여름밤의 꿈!
소쇄원서 꾸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