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칡넝쿨 잎사귀
오늘은 덕분에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버스를 놓쳤기 때문에 아니,
버스를 놓친 덕분에
무슨 소리냐구요?
저는 벌써 7년차 버스를 타고 직장을 다닙니다.
시외곽에 있는 직장
그 직장에 발령을 받으면 꼭 운전면허증을 따든지
그래서 차를 사든지 한다는데
사실 거의 다가 그랬답니다.
왜냐면 차가 없으면 너무도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7년 다녔으니 이제 익숙해서 안 불편하겠지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그 불편 감수하면서 차없이 직장 다니는게 남들이 신통방통하답니다.
제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방통합니다.
끄떡하면 버스 놓치기 일쑤
30분에 한대 있는 버스는 그 도착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버스를 고무줄 버스라고 부릅니다.
어쩔때는 15분도 늦고 어쩔땐 10빨라서 놓치기 다반사
처음 그 버스타면서는 애깨나 먹었습니다.
기사님 운전 솜씨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니
좀체 따라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놓치고 50분 걷고 그도 부족하면 뛰고
겨우 회사 정문에 다달았을땐 숨도 턱까지 찼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젠 도사가 됐나봐요.
최근 한달동안 단 한번도 버스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놓치지 않으려 좀더 부지런 떤 덕분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잘하고 있네 싶었는데
오늘 아침 드디어 버스를 놓쳤습니다.
빠른 버스에 앉아 직진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타고갈 버스는 좌회전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타고 있는 버스가 빠른 버스니 중간에 얼마든지 따라 잡을수도 있으련만
버스는 내 바쁨은 안중에도 없는지 신호마다 다 걸렸습니다.
머피의 법칙은 이럴때 적용되겠지요.
어찌 해 볼 재간도 없이 아주 줄행랑을 쳤습니다.
하는수없이 종점에서 내려 걸었습니다.
까짓 아침50분은 볕도 따갑지 않으니 걸을만하려니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차들은 쌩쌩 달리고 볕은 따갑고
손갓을 해도 볕을 가리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가진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방없이 출근한 날이어서 걷는건 그나마 다행인데
볕 가릴 그 무엇 하나 없는게 아쉬웠습니다.
뛰고 그러다가 숨차면 걷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내 눈에 띈 것은 길바닥까지 점령한 칡넝쿨이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칡넝쿨 잎은 한줄기에 세개씩 달고 있었습니다.
세줄기 꺾으니 하늘의 해가 다 가려졌습니다.
그 잎사귀로 햇빛 가리며 걸었습니다.
제딴에는 최선이었는데 아마도 버스에서 혹은 승용차에서 본 사람들
제 모습 보고 진풍경이라고 했겠지요.
길을 걷다가 승강장에 멈춰있는 단골버스를 봤습니다.
기사님과 인사를 건넸더니만 절보고 피식 웃었습니다.
햇빛 가리개 칡넝쿨이 우스운게죠!
우습거나 말거나 내겐 요긴한 햇빛가리개였습니다.
50여분 걸어서 직장에 도착하니
그래도 제가 1등 출근이네요.
시상에나!
얼만큼 집에서 일찍 나왔는지를 알겠지요.
요새 버스 놓치지 않은 이유는 이 바지런 덕분이었는데
시간보다 너무 빨리 와 버린 버스는
내 바지런을 무색케하고 말았습니다.
버스를 놓친 덕분에 자연 햇칩 가리개 쓰고 출근할수 있었습니다.
걷고 또 뛰고 칡넝쿨 잎사귀까지 들고온 오로지 자연인이었던 하루의 시작은
버스를 놓침으로서 가능했습니다.
어쩌다 한번은 가능한 일은
고마운 칡넝쿨 잎사귀 덕분이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