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
봄날같은 겨울이라고 투정을 했더니만
이내 눈치 빠른 겨울이 겨울다움을 자랑하구나.
코끝이 시려운 매서운 날씨야.
정작 겨울은 추워야한다면서도 또 추위앞에선 엄살을 부리게 되는구나.
추워서 좋은 겨울이다.
이 겨울에 스물여섯 내 딸이 결혼을 하는구나.
남들이 묻는다.너무 빨리 딸을 시집보내서 서운하지 않느냐구?
어찌 서운하지 않을까?다정다감한 내 딸 함께하면 한없이 좋은것을.....
하지만 또 좋은 짝꿍을 만나서 결혼한다니 이 또한 좋은일 아니겠니?
사랑하는 딸,
결혼 축하한다.
우린 참으로 죽이 잘 맞았지? 천상 우리는 애틋한 모녀였다.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시간들이 흘러버렸는지 참 아쉽기만 하다.
어릴적 넌 귀여운 딸이었다.사소한 것도 잘 챙기는 마음이 따뜻한 딸!
생각나니?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오던 날
늘 오던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던 널
기다리며 엄마 아빠는 발을 동동 굴렀었다.
혹여 경찰서에 신고해야하는건 아닐까 생각도 했었는데
초조한 부모와는 달리 넌 야심한 시간에 느긋하니 돌아왔다.
술 취한 아저씨가 길 바닥에 누워 있어 그냥 올 수 없었다고 했지.
차비를 잃어버렸다는 시골 학생을 위해 네 용돈도 기꺼이 쥐어주던
마음씨 따뜻한 딸!
네게도 사춘기는 그냥 건널 수 없는 강이었지.
질풍노도라는 말을 너를 통해서 실감했고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난생 처음 알게 해 준것도 너다.
네 덕분에 엄마도 인생공부를 많이 했고
사춘기 슬기롭게 잘 극복해주어서 고마웠어.
더 고마운 건 엄마의 오래된 꿈을 이뤄준거야.
꿈의 대물림은 기어코 네가 해내고 말았어.
네가 하고픈 선생님 그 자리에 섰으니
초심 잃지 않고 열심이면서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으로 남기를 바란다.
결혼전 엄마와 3박4일!
함께 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어!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힘들때 꺼내고픈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주어서 고마워 이쁜 딸!
며칠전 우리는 어쩌면 모녀 아니랄까봐 그리도 한 오지랖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난다.
날도 추운데 지하도에서 광고 전단지 돌리는 장애인을 보고
전단지에 나온 광고주에 전화를 해서 일당을 주는지를 확인한 너.
그 시간쯤 엄마는 문화예술회관에 대낮처럼 불이 밝혀진 걸 보고 전화해서 불끄라고 했잖니?
참 잘 통하는 딸이었는데
'역시나 큰딸은 달라' 소리가 절로 나도록 의젓했던 딸인데.....
널 시집 보내야한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구나.
시집가도 예전처럼 우리 애틋한 모녀 되자꾸나.
사랑스런 아내,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도록 노력하려무나!
초저녁 잠 좀처럼 이길 수 없는데 오늘은 기적처럼 날을 새웠다.
내 불면의 밤은 너로 인해서 임을 넌 알기나 할는지?......
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몇자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