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를 만나다
며칠전 신문에서 본 기사 하나가 내 맘을 사로 잡았습니다.
무등산의 억새 풍경이었습니다.
이 가을 억새를 안 보고 지낸다면 억울할 듯 싶었습니다.
기어코 보아야 할듯 싶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야했습니다.
그래서 잡은 날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어젠 종일 내린비를 보면서 혹여 오늘까지 비가 이어질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비는 그쳐주었습니다.
가을비 그친뒤 기온이 급감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서 무등산행이 발목 잡힐까봐 딴에는 노심초사였습니다.
함께가기로 한 사람에게 늦은 밤 문자가 왔을땐 깜짝 놀랐습니다.
혹여 날 추우니 담에 가자는 문자가 아닐까?
하지만 예상 빗나가는 따뜻한 문자였습니다.
날 추우니 뜨시게 입고 보온병에 뜨건물 담아오라는 문자였지요.
바람이 불어서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날 춥다고 아니 나설수 없었습니다.
무등산을 찾는데 바람은 방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도대체가 몇달만에 만나는 무등산인지 헤아려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만나는 지라 산행길은 더 즐겁습니다.
늘 가던 길과 다른 색다른 길로 올랐습니다.
봉황대에서 중머리재로
간만에 산에 오른 티가 금새 납니다.
조금 올랐을뿐인데 헉헉
중머리재 억새밭에 텁썩 앉아 숨을 돌려야했습니다.
뜨건 커피 한잔이 몸 녹이기엔 제격입니다.
장불재서 바라본 입석 서석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르고 또 오르니 서석대 정상입니다.
그곳에 서고 보니 바람은 시원합니다.
낑낑 거리고 땀흘려 올라온 때문이데
이도 잠시뿐입니다.
금새 바람은 차갑습니다.손이 시립니다.
정상은 벌써 계절을 앞서 겨울 어디쯤 와 있는듯 싶었습니다.
바람막이가 되는 바위 어디쯤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기껏해야 밥에 김치 뿐이지만 산에서의 밥은 모두 맛있습니다.
거기에 뜨건 라면과 커피 그리고 과일까지
맑은 공기와 햇살까지 벗인양 함께하니
이보다 더 멋진 점심은 없습니다.
애써 올라온 보람이 느껴집니다.
햇살가까이 올라왔으니 볕이 제법 따사롭습니다.
점심 뒤의 여유는 순전히 뜨신 햇살 덕분입니다.
한동안 바위에 앉아 이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 몇자락 흥얼거려봅니다.
노래라곤 도시 끝까지 아는 노래가 없는지라 금새 바닥이 납니다.
못 불러도 나무랄 사람없으니 그 산이 참좋습니다.
하산길은 중봉을 택했습니다.장불재서 중봉으로 가는 그 억새밭이 목표였으니 곧장 그리로 갔지요
시기가 좀 늦긴 했지만 억새은 은빛물결에 잠길수 있음이 행복했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노래를 억새가 속삭이듯 그렇게 한없이 흔들렸습니다.
바람 많은 날의 억새밭은 더 운치가 있었습니다.
하산 길에 만난 야생화 산국 구슬봉이와 구절초도 등산의 행복을 더했습니다.
산국의 향에 취해 거기서는 잠시 발걸음 멈추고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자연속에 왔으니 자연의 냄새를 온전히 맡아야하는양 그렇게 몸을 낮추니 정말 향이 전해오더군요.
6시간 산행
늦가을 정취를 맘껏 즐길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숨어우는 바람소리 듣고 싶네요
아마도 그 음악 듣노라면 오늘 만난 억새밭이 파노라마처럼 스칠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