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내 딸의 캄보디아 해외봉사후기
나의 배낭은 무겁지 않다.행복이라는 배낭이기에
누군가 내게 대사협 캄보디아 봉사활동이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한마디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No pain no gain"이라고.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사전교육이며 워크샵 받으러 가는 일, 밤새가며 캄보디아 단어를 외우던 일, 그리고 현지에 가서 매일 밤 회의와 힘든 날씨와 교육환경은 버거웠지만 많이 힘든 만큼 캄보디아에서 돌아 올 때, 나의 배낭에 소중한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을 한 아름 얻었다고.
시엠립 공항에서 캄보디아 땅을 처음 밟았을 때가 기억난다. 식물원에 막 들어갔을 때의 그 열기처럼 뜨겁고 습기가 가득한 공기를 마시며 우리의 봉사활동은 그렇게 뜨겁게 시작되었다. 늦은 저녁 호텔에 도착해서 잠이 들고 둘째 날에는 우리가 교육봉사를 할 민채이 대학교를 갔다. 민채이 대학교 학생 친구들의 꿈처럼 넓은 학교를 구경하고 나서는 현지 가정방문을 했다. 그 곳은 맨발로 걷는 아이들, 비가 새는 지붕, 무너질 듯 한 집, 항아리에 물을 받아서 식수로 사용하는 모습 등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밝아 아름답게 느껴지고 부러울 정도였다. 닭, 개, 소와 놀고 자연과 어우러진 그들의 삶에는 근심, 걱정이 없어 보였고 눈부시게 푸르른 자연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자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자연 속에 사는 작은 남자 꼬마 아이가 와서 내 손을 잡을 때 느꼈던 따스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저녁에 회의를 마치고 셋째 날부터는 교육활동이 시작되었다. 두 달 동안 준비한 시간이 보람차게도 만족스러운 수업을 했다. 나는 한국어 교육팀이었고 첫 수업은 역할극이었는데 A반 학생들이 한국어를 정말 잘해서 통역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회의와 수업은 지칠 만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학생들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면 힘이 솟았고 보람을 느꼈다. 3일 간의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주말동안 대학생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내가 홈스테이를 한 곳은 저녁을 벌레와 함께 먹고 화장실 가는 길은 멀고 샤워할 수도 없는 환경으로 처음에 힘들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저녁이면 반딧불이와 별이 어우러진 밤하늘을 볼 수 있고 아침이면 닭 우는 소리랑 밥 짓는 냄새에 눈을 떠서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곳에서 함께한 좋은 사람들... 승사롬, 찐, 소파 이렇게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피크닉도 가고 오토바이 뚝뚝이를 타고 산책도 가고 빙수도 먹고 했던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홈스테이를 마치고 초등교육 이틀간은 엄청나게 덥고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지만 단원들의 격려와 위로로 다시 한 번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초등교육 후로 다시 돌아온 대학생 교육활동에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우리 또래인 친구들이기에 더 많은 교감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돌아가면서 소감을 한 마디씩 했는데 눈물을 참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부족한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들, 잊지 못할거라고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게 아쉬운 인사를 뒤로 하고 페스티벌을 분주히 준비해서 민채이에서 마지막 날 멋진 페스티벌을 이루어냈다. 이틀 간 준비한 코코넛댄스도 선보이고 한국에서부터 준비한 치어리딩도 보여주고 우리들의 지난 2주를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사진도 찍으며 말 그대로 축제의 시간을 보냈고 다시 만나자는 밝은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시소폰을 떠났다.
나의 몸은 시소폰을 떠났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도 그 곳에 있는 듯하다. 얼굴에 항상 미소 가득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든든한 단원들, 맛있는 과일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정말 감사하고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이러한 행복이라는 배낭이 있기에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