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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 떠나가 볼꺼나!

클레오파트라2 2010. 10. 12. 21:52

낯선 곳으로 떠나가 볼꺼나?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오늘도 그렇게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떠나는 곳은 더 낯설어서 구미가 당기는 곳이었습니다.

문학기행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떠난 곳은 충남 홍성

난생 처음이라는 표현을 빌려야할 곳이었습니다.발길 손길 눈길 처음으로 가 닿는 곳이니

떠나는 날 설렘은 당연한게지요.

햇살 좋은 가을날 그렇게 이른 시간 떠나갔습니다.도심을 살짝 벗어남에 풍성한 가을이 느껴지더군요.들녁은 온통 황금들녁 그대로였습니다.보고만 있어도 풍요로움이 절로 느껴진다고나 할까요?거둬들이 논떼기 하나 없지만 그냥 맘이 풍성해지는 들녁을 두어시간 남짓 달리니 홍성이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 덕에 홍성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한우가 유명하다는데 들녁 곳곳에 늘어선 축사들이 그걸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 싶었습니다.

시골 내음이 물씬 풍겨와도 코를 막고 인상 찌뿌리기보다는 설핏 스치니 못 맡은양 그렇게 지나쳤습니다.

첫발을 내딛은 곳은 만해 한용운 기념관.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만났던 만해 한용운을 그곳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어린시절 33인 대표시절 백담사시절

시대별 전개가 한용운을 이해하는데 훨씬 쉬웠습니다.

학창시절에 작품으로 만난 한용운은 무척 어려웠는데 말입니다.

만해를 만나고 보니 불현듯 시간을 거슬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시 몇수 외워보겠다고 몸서리치게 밤을 뒤척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근사한 낭송까지 해보겠다고 애송시 테잎이 닳도록 들었는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저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

테잎에서 흘러 나왔던 낭랑한 목소리가 어제인양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어디 그 시 뿐이던가요?

애송하던 시들이 줄줄이 고구마 줄기 캐듯 그렇게 나왔지요.

윤동주의 별 헤는 밤,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유치환의 바위 등등

나룻배와 행인 이라는 한용운 시도 다시 만났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보고 흔적을 찾아 생가에 갔습니다.초가삼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아담한 집이

눈에 띄더군요.툇마루에 앉고보니 너른 뜰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옆에 있는 샘은 발길을 불러들이더군요.두레박까지 있어 직접 물을 길어 보았습니다.예전엔 거뜬히 들여올렸던 두레박이 간만에 접해서인지 참 버거웠습니다.

맑은 샘물인데 차마 먹을수는 없었습니다.샘 바닥서 반짝이는 동전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만해사까지 갔습니다.만해 선생을 모신 사당이었습니다.사당에 올라 주위 경관을 보니 주위엔 소나무가 아늑하니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다음은 그림이 있는 정원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유발했습니다.정말 그림이 있을까?

이름이 이뻐서 얼른 가보고팠던 곳.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된 아들 그 아들을 위해 나무를 심었던 아버지의 부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정원엔 정말 그림도 있었습니다.

구필화가 아들의 그림이 정원안에 있었습니다.

그림이 있는 정원은 절망을 희망으로 노래한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사람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정원은 정말 잘 가꿔져있었습니다.

입으로 그린 아들의 그림은 감동이었습니다.콧날이 시큰하기도 했습니다.

정원이 통유리를 통해 송두리째 들어오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또 그곳을 산책하고

모처럼 여유로운 가을을 만끽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숲이 뿜어내는 좋은 공기에 절로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지요.

떠나는 길까지 배웅하는 노 주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꼭 많은 사람들에게 소문이 많이 나서  그림이 있는 정원이 대박 나기를 기원했습니다.

3만평의 정원을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을터 40여년을 가꿔왔다니 앞으로의 가꿈은 흔들림없기를 바래보았습니다.마지막은 남동항에 닿았습니다.

주차장에 발을 딯자마자 바닷내음이 덥쳤습니다.먹이를 찾아 낮게 나는 갈매기떼도 보였습니다.

상가들이 즐비한 거리를 할일없이 걷노라니 갈매기떼의 모습이 아주 가까이에 들어왔습니다.

유난히 갈매기떼가 많은 이유를 금세 알았습니다.금방 상가의 아짐은 갈매기 먹이를 가지고 가서 바다에 던졌나 봅니다.비릿한 텅빈 양푼이 그걸 말해주었습니다.대하가 철인가 봅니다.상가마다 잘해주겠다며 호객행위를 하지만 밥 숟갈 금방 뺀 터라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상가 가운데 복판에 차려진 무대는 대하축제 뒷모습이었습니다.관객없는 무대에 어느 동네 아주머니들의 독무대가 펼쳐졌습니다.

귀에 익숙한 트롯이 바닷가에 울려퍼집니다. 축제가 끝나도 축제는 계속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면서 보니 대하 축제는 9월부터11월까지는 아직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네요.한바퀴 느리게 돌아보던 이들이 한 상가앞에 섰습니다.팔딱이는 대하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게지요.

너나없이 스티로풀에 펄떡이는 대하를 담습니다.모처럼 수지 맞은 장사를 한걸까요?아님 이제 마수걸이를 거하게 한걸까요? 입에 귀에 걸린 아짐에게 많이 샀으니 덤으로 가면서 먹게 산 대하를 몇개 달랬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네요.그도 안되면 전어라도 몇마리 달라니 전어는 기꺼이 준다며 푸지게 넣어줍니다.

얼음이 들어갔건만 아직도 펄떡이는 대하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손에 손에 쥐고 만족스런 모습들입니다.양파망에 가득담긴 호박고구마도 욕심이 났는데 가지고 갈 생각에 살 엄두를 못냈습니다.본의 아니게 가격만 물어보고 줄행랑 치는 염치 좋은 관광객이 되고 말았네요.

돌아오는 길 문학기행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보니 금세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낯선곳으로의 떠남이 모두들 행복이었다고 입을 모았지요.

떠나니 행복했다면 이 가을 떠나기를 참 잘했지요.

문학기행은 펄떡이는 대하와 함께 돌아오고 말았습니다.